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그동안 창의적 활동의 기본 요소들을 덩어리로 구조화하는 능력이 정말 있는지 의문이었다. 차라리 그냥 기본 정보들을 연결하는 게 훨씬 쉬운 설명이었다. 정보들을 위계화하고 배열하는 능력이 어떤 활동인지와 무관하게 별도로 존재하는가? 그런데 최근 생명과학 온라인 저널 ‘e-라이프’에 공개된 논문에 따르면, 뇌파(뇌전도·EEG)를 이용해 그런 제어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 특히 탁월한 작업 기억 능력은 관념적인 정보들을 활용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피아노를 잘 치는 이들은 박자나 기호들의 규칙, 음표의 조합 등 기본 요소를 하위 단위로 잘 묶어서 끄집어냈다. 노래하거나 춤을 추고 혹은 프로그래밍 등을 하려면 우선 기교의 기본 요소들을 불러내 창의적인 방법으로 정렬하고 재조합해야 한다. 기본 요소들은 응축된 개념으로서 재현 혹은 표상 단계를 거쳐 숙련된 작업으로 나아간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수학·과학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기계가 대신할 테니 골치 아픈 교육이 필요하겠느냐는 강한 주장이다. 하지만 언제나 기본이 중요하다. 오히려 거꾸로 수학·과학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왜냐하면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 개념들을 구조화하고 재배치하는 데서 창의성이 발현된다.
이제 피실험자들에게 각 덩어리와 선분의 배열을 기억하게 하고 테스트했다. 이때마다 뇌전도는 진동 패턴들을 나타냈다. 뇌전도에서 알파 영역대(8∼12Hz)는 기본 요소들을 기호화해 불러낼 때, 세타 영역대(4∼7Hz)는 그 기본 요소들이 정렬될 때 나타났다. 이로써 어떤 기본 요소들이, 어느 지점에서 덩어리로 묶여, 어떤 작업들을 수행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피아노를 친다면 전체 악보에서 어느 마디, 어떤 음표를 연주하고 있는지 뇌는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즉, 순간순간 기본 요소들의 덩어리를 지정(addressing)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좀 더 추상적인 수준의 강한 뇌전도 패턴들을 보여주지 못했다. 즉, 복잡하고 연속적인 작업들을 수행해내는 걸 힘들어했다. 결국 작업 기억 능력이 탁월해야 뇌의 현재 특정 영역이 활성화했다. 한마디로, 어느 작업이든 우선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고, 분석하며, 종합하는 게 필요했던 셈이다. 뇌가 기본 요소들을 덩어리로 기억하려면 추상적 재현 능력이 중요하다. 이 능력은 당연하겠지만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게 아니라 훈련이 필요하다. 수학·과학이야말로 고도의 추상적 논리와 현상에 대한 분석 및 종합적 사고 능력을 배양해주는 학문이다. 연구진은 이제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의 순차적 지정 시스템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기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창의성은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건 바로 그 영역에서 기본이 얼마만큼 충실한가와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간절함과 진정성이 있으면 작업 기억 능력은 분명 배가될 것이다.
김재호 과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