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그룹 퀸의 1984년 공연 모습. 왼쪽부터 존 디콘(베이스기타), 프레디 머큐리(보컬), 로저 테일러(드럼), 브라이언 메이(기타). 머큐리는 일상에서는 조용하고 두려움 많은 소수자였지만 무대에 오르면 난폭한 판타지 제왕이 됐다. 퀸 홈페이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이 음반계로도 옮아왔다. 미국 경제 매체 마켓워치는, 영화의 인기로 퀸의 노래 ‘Bohemina Rhapsody’의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 수가 통산 16억 회를 돌파했다고 10일(현지시간) 밝혔다.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를 제치고 스트리밍 시대 이전에 발표된 노래 가운데 최다 재생 수를 기록했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에 따르면 퀸의 베스트 앨범은 영화 개봉 뒤 한 달 동안 팔린 양이 앞서 4년간 팔린 양을 넘어섰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관람이 아닌 음악적 체험이다. 영화적 매력 뒤에 그보다 더 센 음악의 힘이 있다.
○ 인지과학이 지목한 목소리…‘BoRhap’의 신비
‘Mama, just killed a man…’
가장 많은 관객을 울린 영화의 하이라이트, ‘라이브 에이드’ 장면은 그래서 역설적이다. ‘We Are the Champions’를 제외한 세 곡은 특별히 객석을 향해 친절한 위로나 공감을 건네는 노래는 아니다. ‘Radio Ga Ga’와 ‘Hammer to Fall’은 라디오에 대한 향수, 냉전 시대의 공포를 다뤘다.
머큐리의 목소리에 비밀이 있을까. 2011년 유럽의 인지과학자들은 수천 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역사상 가장 뇌리에 각인되는 노래를 조사했다. 1위는 퀸의 ‘We Are the Champions’. ‘라이브 에이드’의 그 마지막 곡이다. 당시 연구진이 내놓은 가설은 흥미롭다. 선사시대 사냥과 전쟁을 이끌던 남성 지도자의 높은 호전적 외침이 준 흥분의 경험이 인류의 DNA에 남았고, 그에 가장 가까운 음성 형태가 머큐리에게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연구진은 머큐리의 비브라토에 주목했다. 6Hz 넘는 빠르기의 불규칙한 떨기 창법이 인지과학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파고든다는 것이다.
○ 음악 넘쳐나지만 음악에 몰입 못하는 시대의 역설적 열풍
쨍하게 명도 높은 목소리, 쉴 새 없이 떠벌이는 듯한 가창법은 자극적 콘텐츠가 범람하는 스마트 시대에도 퍽 어울린다. 나아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음악에 무아지경이 되는 신선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이어폰은 끼고 살지만 인스타그램, 유튜브의 시각적 이미지에 더 몰두했던 이들, 야외 음악 축제에서 맥주나 간식 먹기에 바빴던 이들에게. 10만 원, 20만 원 주고 들어간 페스티벌에서도 못 누린 음악적 판타지를 1만 원 내고 입장한 극장에서 선물 받은 셈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