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공부 언제쯤부터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한글은 취학 1년 전, 7세에 가르치면 된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3, 4세만 돼도 한글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한글에 자존심을 걸기 때문이다. 한글을 빨리 떼는 것이 우리 아이가 똘똘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각종 수단을 동원해 한글 배우기에 집중한다. 그런데 그렇게 가르치면 한글은 조금 빨리 떼겠지만 학교를 가기 전에 공부에 스트레스가 생기게 된다.
한글은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주제가 아니다. 너무 일찍 가르치지만 않으면 한글을 배우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너무 일찍 가르치면 말을 배워야 할 시기에 글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똑똑한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라도 각각의 발달이 준비되려면 일정한 시간이 요구된다. 준비가 되었을 때 가르쳐야 지나친 스트레스 없이 훨씬 빨리 배울 수 있다. 너무 빨리 가르치면 시간은 시간대로 더 들고, 아이는 아이대로 더 힘이 들면서도 제대로 배우기 어렵다.
7세 이전에는 말하기, 듣기를 충분히 하고 학교 가기 1년 전에는 쓰기와 읽기를 가르치는 것이 좋다. 말하기, 듣기를 가르치는 것에 가장 유용한 도구가 바로 부모가 읽어주는 그림책이다.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어휘를 많이 늘려야 하고 그 어휘의 소리, 정확한 발음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림책을 이용하면 어휘를 많이 늘리고, 소리를 많이 들려줄 수 있다. 그런데 그림책을 읽어주라는 것은 그림책에 있는 글자를 자주 보고 듣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림책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림책을 그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그림책은 한글을 들려주는 재료일 뿐 교재가 아니다. 부모가 재미있게 변형해서 읽어주거나 그림책 내용을 완전히 숙지해서 이야기처럼 해주는 것이 한글을 배우는 데 더 요긴하다. “옛날 옛날 형제 두 명이 살았는데….” “그런데 엄마, 형제가 누구야?” “큰형, 작은형이 형제야. 은우네 집 알지? 걔네 집이 형제야.” 이렇게 얘기 중에 나온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아이가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돕는 것이다. ‘한글’ 욕심에 글씨 없는 책은 안 사주는 부모들도 있는데 글씨 없는 그림책만큼 좋은 책도 없다. 부모도 읽어줄 때마다 다르게 읽을 수 있고 아이도 볼 때마다 다른 상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에는 어느 정도 한글을 읽고 쓸 줄 알아야 하겠지만 몇 년 전부터 너무 빨리 시작하는 ‘한글 쓰기’는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다. 자기 의견을 잘 말할 수 있고, 남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이해할 수 있고, 누군가 읽어주는 그림책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이 조금 읽을 줄 알면 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