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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참고서-주차장… 심지어 1층에도 없는 게 더 많은, 그래서 더욱 사랑받는 책방

입력 | 2018-12-12 03:00:00

[동네 책방의 진열대]<7> 독립출판물 전문 서점 서울 연희동 ‘유어마인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독립출판물 전문 서점 ‘유어마인드’ 내부. 유어마인드 제공

연희동으로 책방을 이전한 뒤 이곳에 무엇이 없는지 자주 떠올립니다. ‘어떤 요소가 있는지’로 정의되는 서점도 있지만, 근래의 작은 책방들은 주로 ‘무엇이 없는지’로 정의된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부터 작가들이 직접 만든 독립출판물을 주로 판매해 왔습니다. 내년이면 10년 차가 되는 서점이라 책이 많이 쌓였을 것 같지만 여전히 없는 것투성이입니다. 고전이 없고, 문학상을 받은 책이 없고, 대형 출판사 책이 없고, 참고서가 없고, 베스트셀러가 없고, 사전이 없고, 전자책이 없고, 실용서가 없습니다. 충분한 재고도 주차장도 없고, 1층에도 없네요.

‘유어마인드’가 세상에서 아름다운 서점으로 꼽히거나 죽기 전에 가봐야 하는 책방에 꼽힐 일은 없을 겁니다. 이곳은 찾는 사람 누구나 만족시키는, 훌륭한 서점이 아닙니다.

판매하는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발간 즉시 수십 개 언어로 번역되는 베스트셀러라든가 100년째 읽히는 걸작을 잘 소개하고 판매할 서점은 많습니다. 그보단 개인들이 만든, 허점이 많지만 그래서 뾰족한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울퉁불퉁한 이야기라 모두와 담을 쌓을 것 같지만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몇몇 독자에겐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는 책이 됩니다. 아이가 그린 삐뚤삐뚤한 꽃 그림을 엮은 ‘지유꽃도감’(토끼풀), 한여름 포르투갈 풍경을 그림과 사진으로 직접 제본한 ‘Sea of Portugal’(영민), 뭇사람이 가진 직업에 관한 시각을 개인적인 어조로 푼 ‘저 청소일 하는데요?’(코피루왁) 같은 책을 보며 늘 감탄합니다.

근래에는 주인장이 좋아하는 책이라도 이 작고 적은 책들이 보여주는 맥락과 엇나간다면 들여놓지 않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방법, 즉흥의 발상, 소수의 감각, 시각적인 표현들이 서로 힘을 주고받기 위해 위에서 열거한 ‘없는 요소들’은 앞으로도 없을 예정입니다. 넓은 공간의 코너 하나를 채울까 말까 한 장서량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존재의 구색 갖추기 용도가 아니라 이 얼마 안 되는 책들이 이곳의 핵심이 됩니다.

매체에서 작은 서점을 특집으로 다루며 취재할 때면 “2018년의 책방이 희망인지 절망인지 지금 빨리 답하라”는 풍의 질문을 자주 합니다. 하지만 공간을 운영하는 일에는 하루에도 희망이 여섯, 절망이 여섯, 합해서 매일 열두 가지 감정이 뒤섞여 대답이 쉽지 않습니다. 진단과 예측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우선 새로 들어온 책 박스를 뜯으며 이 안에 든 이야기가 우리를 어떻게 간질이거나 찌를지 기대하는 시간에 집중하겠습니다.

○ ‘유어마인드’(서울 서대문구 연희로)는

2009년부터 국내 소형 출판사와 개인 아티스트가 제작한 독립출판물, 아트북을 위주로 수입 서적, 음반, 굿즈를 함께 판매하고 있다.
 
이로 ‘유어마인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