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연구팀, 세계 최초 시도 주목
12일 서울대 정밀기계설계공동연구소 실험동에서 민경덕 소장(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이 개발 중인 융합연소 엔진을 보여주고 있다. 융합연소 엔진은 디젤과 가솔린 연료를 동시에 사용하는 엔진으로 두 엔진의 장점만 살렸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꼭 심장을 해부해 놓은 것 같았다. 어른 가슴 높이에 매달린 작은 의자 크기의 자동차 엔진은, 연료가 들어가고 가스가 나오는 복잡한 배관으로 근육처럼 울룩불룩했다. 얽히고설킨 무수한 전선은 꼭 혈관처럼 보였다. 미래 자동차의 새로운 심장이 탄생하는 방이었다.
12일 오후, 민경덕 서울대 정밀기계설계공동연구소장(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과 함께 연구소 바로 옆에 마련된 실험동에 들어섰다. 현대자동차가 한국의 미래 자동차 연구를 위해 써달라고 기증한 실험동이다. 실험실을 지키고 있던 주상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연구원이 “얼마 전까지 실험을 하던 터라 전선이 연결돼 보기에 좀 복잡하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가리킨 실험용 엔진은 두 가지 연료를 동시에 사용하는 엔진. 승용차용 엔진은 사용하는 연료의 종류에 따라 디젤 엔진과 가솔린 엔진으로 구분되는데 민 교수와 주 연구원이 개발 중인 이 엔진은 두 가지 연료를 동시에 사용한다. 두 가지 연료를 쓴다고 해서 ‘이중 연료(Dual fuel) 엔진’이라고 하기도 하고, 연료를 융합해 연소한다고 해서 ‘융합연소 엔진’이라고도 한다. 엔진은 하나인데, 연료를 분사하는 장치(인젝터)가 두 개 있어서 가솔린과 디젤을 각각 엔진 안에 직접 분사해 연소시킨다. 4년째 개발 중으로, 아직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완성하지 못한 기술이다.
이런 엔진을 개발하는 이유는 가솔린과 디젤 각각의 장점만 섞어 결합하기 위해서다. 디젤 엔진의 경우, 고온 고압 상태에서 연료(경유)를 분사시키면 별도의 점화 과정이 없어도 경유가 자연 발화하면서 연소되는 특징이 있다. 이를 이용해 ‘직접 분사’라는 기술이 탄생해 현재 디젤 자동차에 널리 쓰이고 있다. 반면 가솔린은 그냥은 발화하지 않기 때문에 별도로 사전에 고온 고압 환경을 조성해 가솔린과 공기를 섞고, 이후 이 혼합 상태의 가솔린을 엔진에 분사해 점화 플러그로 연소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가솔린을 마치 디젤 엔진에서처럼 직접 분사해 점화시키는 가솔린직분사엔진(GDI)이 이런 연구 중에 탄생했다. 디젤 엔진에 가솔린처럼 사전에 연료와 공기를 섞는 과정을 도입한 PCCI라는 엔진도 있다. 일본도 연료를 미리 혼합 압축해 연소시키는 예혼합압축착화(HCCI) 엔진을 개발하는 등 디젤 엔진과 가솔린 엔진의 특징을 혼합시키는 연구가 활발하다. 민 소장은 “자동차 엔진에 뭐가 더 연구할 게 있느냐는 말을 종종 듣지만 연구할 미래 엔진이 여전히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민 소장과 주 연구원은 아예 두 연료를 동시에 주입하는 엔진으로 디젤과 가솔린의 장점을 융합하고 있다. 그게 바로 융합연소 엔진이다. 아직은 한 개의 기통만 갖고 연소 등 기본적인 과정을 실험하고 있는 초기 단계지만, 이미 일부 성과를 내고 있다. 실험 결과 기존 디젤 엔진에 비해 연비는 약 5.6% 높아지고 질소산화물은 72%, 미세먼지는 98.7%까지 줄어들었다. 특히 디젤 엔진의 골칫거리 중 하나인 미세먼지의 양을 크게 줄여 지금 디젤 차량이 장착하고 있는 미세먼지 후처리 제거기기(DPF)를 소형화하거나 아예 없애도 될 정도다.
민 소장은 “엔진 연구를 통해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도 효율은 더 높이고 오염은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며 “엔진이나 파워트레인 등 기존 자동차의 성능을 높이는 분야가 최근 국내에서는 활발히 연구되지 않고 있는데, 전기차 시대가 와도 여전히 엔진을 쓰는 자동차 시대가 이어질 것이므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