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아픔이란 게 아예 없는 세상이 올까요. 출판인, 학자, 문화예술인 등 45명에게 ‘2018년 올해의 책’을 5권씩 꼽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번이라도 추천된 책은 모두 119권. 그 가운데 상위 10권을 ‘올해의 책’으로 꼽아보니 우리 사회의 여러 아픔들에 관한 책이 6권이나 됩니다. 저자와 독자, 출판이 세상의 고통을 직시하고 있다는 뜻일 테지요. 분주한 연말 독자의 책 선택에 도움이 되길, 모두가 조금은 덜 아픈 새해를 맞기를 바라며 ‘올해의 책’을 소개합니다.
■ 골든아워
이국종 지음·1권 438쪽, 2권 388쪽·흐름출판
“책의 힘을 보여준 올해의 문제작”(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은 ‘골든아워’(전 2권)였다. 선정위원의 절반에 가까운 20명이 ‘올해의 책’으로 추천해 압도적으로 많은 선택을 받았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낙후한 중증외상 의료 현실에 대한 보고서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권역외상센터장)가 2002년 외상외과에 발을 들인 뒤 올 상반기까지 17년 동안의 진료, 수술 기록과 기억을 바탕으로 사선에서 싸우는 환자와 의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같은 찬사는 우리나라에 국제 표준 중증외상 치료 시스템을 정착시키기 위한 저자의 고투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책의 인기에 한국사회의 그늘을 지켜온 한 의사와 외상외과 팀에 대한 응원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의료 현실 문제제기를 넘어 삶과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기에 더 큰 울림을 갖는다고 선정위원들은 입을 모았다. “외상외과 뿐 아니라 우리 사회와 삶의 모습을 오버랩하고 있다”(이치억 선임연구원), “한국 사회의 시스템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김소영 문학동네 편집장), “지켜야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최선을 다해 읽어야 하는 책”(김영건 속초 동아서점 운영자), “세상의 변화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온몸으로 알려 준다”(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는 평가다.
박상준 민음사 대표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분투가 명확하고 담담한 문장으로 담겨있음이 놀랍다”며 “이 책은 기록을 넘어 문학이 되고, 메시지가 되고,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역사의 역사
유시민 지음·340쪽·돌베개
■ 말이 칼이 될 때
홍성수 지음·264쪽·어크로스
“혐오표현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불러일으켰다.”(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428쪽·한겨레출판사 “이 시대 글을 읽고 쓰는 까닭에 대한 곡진한 질문”(김수한 돌베개 편집주간)
■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지음·380쪽·을유문화사■ 당신이 옳다
정혜신 지음·316쪽·해냄출판사 “태풍과 쓰나미가 지구의 병이 아니듯이 우울과 무력감은 삶의 보편적인 바탕색일 뿐이다.”
■ 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356쪽·창비소설로는 유일하게 ‘올해의 책’에 올랐다. 저자의 첫 장편소설로 추천 사유가 강렬하다. 박상준 민음사 대표는 “젊은 작가에게서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탄생한 가장 새로운 장편소설”이라며 “독자로 하여금 한국 소설의 저력을 다시 한번 신뢰하게 만들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도 “새로운 세대의 문학을 피부로 느끼게 한 작품으로 우리 시대의 아픔과 부서진 마음을 바느질 자국이 느껴지지 않는 능숙한 솜씨로 깊게 표현한 올해의 수작”이라고 했다.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를 확인하게 해준다. 마음은 무슨 일을 하는가?”(김수진 푸른숲 부사장)
■ 열두 발자국
정재승 지음·400쪽·어크로스 “자기계발서 같은, 뇌 과학자의 유쾌 발랄 상큼한 강연.”(강맑실 사계절 대표)
■ 검사내전
김웅 지음·384쪽·부키 “현직 검사이면서도 검찰과 검사의 세계를 치우침 없이 솔직하고 흥미롭게 서술했다.”(표정훈 출판평론가)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지음·208쪽·흔독립출판물이 출판시장에서도 폭발적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책이다. 저자가 자신의 기분부전장애 치료기를 담았다. “전문가인 의사의 이야기보다 실제 환자의 치료 후기에 더 깊이 독자들이 공감했다는 점”(김형보 어크로스 대표)이 특징. 고세규 김영사 대표는 “우리 내면의 어두운 면을 솔직하게 포착했다”며, 강인욱 경희대 교수는 “겉으로는 밝지만 숨 막히는 경쟁을 겪어 온 20대의 진솔한 속마음을 느꼈다”며 추천했다. “정신과 치료를 알려도 되는 일로 만든 것만으로도 많은 이에게 힘이 됐다”(김수진 대표)는 평도 나왔다.
▼‘올해의 책’에 아쉽게 선정되지 못 한 책▼
이론물리학자 제프리 웨스트의 ‘스케일’(김영사)이 11위(4표)에 선정돼 아쉽게도 ‘올해의 책’ 10권에는 들지 못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생물계와 사회 시스템이 모두 ‘규모 증감의 법칙’을 따른다고 주장한다. 권은희 까치글방 대표는 “가장 작은 규모의 세포에서 거대한 기업까지 생물학을 넘어 세상을 움직이는 보편 법칙을 탁월하게 추적하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는 왜 도시에 사는가’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 담겼다”(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는 평도 나왔다.
공동 12위에 오른 4권은 나란히 3표를 받았다. 1급 지체장애인인 김원영 변호사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사계절)을 추천한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저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 존엄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책”이라고 했다. 황서현 휴머니스트 주간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마지막’ 변론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이 책을 평가했다.
백선희 번역가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신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김영사)을 꼽으며 “‘사피엔스’로 인류의 과거를, ‘호모데우스’로 인류의 미래를 탐색한 그가 인류의 현재에 던지는 더없이 명철한 진단”이라고 했다. 김희경 작가의 ‘이상한 정상 가족’(동아시아)은 “국가, 사회가 인정하고 보호하는, ‘정상’의 기준을 흔든 책”(김수진 푸른숲 부사장)이라는 평을 받았다.
한승태 작가가 양계장, 도축장 등에서 일하면서 쓴 ‘고기로 태어나서’(시대의창)는 “경험과 인식이 드러난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책이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힘을 느꼈다”(여태훈 진주문고 대표)는 지지를 받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한국 르포르타주의 가능성을 열어준 책”이라고 했다.
▼올해의 책 선정위원(가나다순·45명)▼
강맑실(사계절 대표) 강성민(글항아리 대표)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세규(김영사 대표) 권은희(까치글방 편집팀장) 김기중(더숲 대표) 김보통(만화가) 김소영(문학동네 편집장) 김수진(푸른숲 부사장) 김수한(돌베개 편집주간) 김영건(속초 동아서점 운영자) 김영준(열린책들 주간) 김형보(어크로스 대표) 박상준(민음사 대표) 박영규(교보문고 대표) 박윤우(부키 대표) 박혜숙(푸른역사 대표) 백선희(번역가) 백원근(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서현(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송영석(해냄 대표) 안대회(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여태훈(진주문고 대표) 염종선(창비 이사) 오제연(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유정연(흐름출판 대표) 윤양미(산처럼 대표) 윤철호(출협 회장) 이광호(문학과지성사 대표) 이구용(KL매니지먼트 대표) 이로(유어마인드 대표) 이상욱(한양대 철학과 교수) 이수은(스윙밴드 대표)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장) 이치억(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정병설(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상준(을유문화사 편집주간)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정재승(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주연선(은행나무 대표) 표정훈(출판평론가) 한기호(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한성봉(동아시아 대표) 황서현(휴머니스트 주간)
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신규진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