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5’에서 히라이 가즈오 소니 회장이 자사의 이미지센서가 자율주행 등 첨단자동차에 들어갈 미래를 소개하고 있다. 히라이 회장은 “차의 앞뒤와 좌우 등 사각지대에 이미지센서를 설치해 교통안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동아일보DB
2015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가전박람회 ‘CES 2015’에서 일본 전자업체 소니는 한 해 사업계획을 소개하는 자리에 자동차 그림을 띄웠다. 히라이 가즈오(平井一夫) 소니 회장은 운전자가 보기 힘든 자동차의 ‘사각지대’ 측면, 전면 등 7곳을 강조하면서 “전 세계 차들의 이 부분에 소니의 이미지센서가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미지센서는 카메라에 쓰이는 화상(畵像)처리 반도체다. 그는 “사고를 예방하고 안전한 주행을 위해 자동차에서 (이미지센서)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율주행에 필요한 첨단기술이 교통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 자율차 안전성이 수익으로 연결
동아일보 취재팀은 자율주행차(자율차) 상용화를 2년가량 앞둔 유럽의 산업과 정책, 시민사회, 관련 기술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다. 유럽에서는 자율차가 교통안전 수준을 한 층 더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마이크 호스 영국자동차제조판매협회(SMMT) 회장이 10월 4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의 SMMT에서 본보와 만나 자율주행차 등 첨단자동차의 시장 가능성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런던=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쿠르트 보데비히 독일도로안전협회(DVW) 회장이 10월 8일(현지 시간) 독일 베를린 DVW 본부에서 "자율주행차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베를린=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국제교통포럼(ITF)에서 자율주행차 등 첨단차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필리페 크리스트 선임연구원이 10월 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본부에서 본보 취재진에게 세계 자율주행차 안전 동향을 소개하고 있다. 파리=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전문가들은 “자율차가 안전하게 도로를 달리려면 과제가 적지 않다”고 입을 맞췄다.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국제교통포럼(ITF)의 필리페 크리스트 자동화차량·안전담당 선임연구원은 “미국에서 한 해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90%는 운전자 과실”이라며 “이론적으로는 운전대조차 없어 사람이 운전에 개입할 수 없는 완전 무인 자율주행 단계인 ‘레벨5’에서는 사고가 모두 없어져야 하지만,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게 과제”라고 말했다.
운전대가 있어 비상상황시에만 사람이 운전을 하는 레벨4 자율주행 중에는 운전자가 음주운전, 휴대전화 사용 등 ‘일탈행위’를 할 우려도 있다. 실제 독일의 한 자동차 제조사는 자율차 주행실험을 하던 연구원이 운전석에서 졸기도 했다. 차량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이에 대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자율주행 기술은 이런 위험을 줄이는데 집중해야 한다”며 “차량이 보행자와 다른 차 등 주변을 제대로 파악해 제때 속도를 줄이거나 비상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많은 상황을 가정한 실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유럽의 자율주행 연구는 ‘안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스웨덴의 국립도로교통연구소(VTI)는 자율주행 중 운전자의 신체변화를 감지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차량이 완전 자율주행으로 달리다가 수동으로 운전 상태가 바뀔 때 운전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다. 자율주행 중 긴장을 놓거나 졸던 사람이 운전을 하게 되면 갑작스런 신체변화로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스웨덴 린셰핑에서 만난 안나 아눈드 VTI 도로안전연구원은 “센서를 통해 신체의 스트레스 수치 등 다양한 반응을 확인한다. 이를 통해 운전에 적합한 상태인지 점검하고, 만약의 음주운전이나 졸음운전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중교통으로 쓰이는 대형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면 버스가 자동으로 멈추고 승객이 탑승을 마치면 자동으로 출발하는 기술도 개발 중이다. 승객의 탑승 상태까지 모두 일일이 확인해야 했던 버스 운전사가 안전한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난 로렌스 에트키손 유럽교통안전위원회(ETSC) 연구원은 “자율주행이 가능해져 사고를 피할 수 있는 기술들이 개발되더라도 안전만큼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자율차 시대의 첫 조건은 ‘안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박수정 한국교통안전공단 선임연구원은 “국내에서도 자율차 관련 연구개발(R&D), 실험도시 ‘K-City’ 구축 등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자율차가 도로를 주행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자율차는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린셰핑·브뤼셀=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사진=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 시속 100km 달리던 자율차 운전대에서 두 손 떼니… ▼
화성 ‘자율주행차 실험도시’를 가다
“이제 자율주행 모드로 들어가겠습니다.”
10일 경기 화성시 자율주행차실험도시(K-City)의 고속주행 시험 구간. 한현수 한국교통안전공단 선임연구원은 시속 100㎞로 달리던 자율주행차(자율차) 운전대에서 서서히 두 손을 뗐다. 차량에 동승한 본보 취재진은 순간 호흡을 멈추고 지켜봤다.
긴장도 잠시, 차는 스스로 매끄럽게 운전을 이어갔다. 곡선 구간에 다다르자 자동으로 시속을 80㎞로 낮췄다. 안전한 주행을 위해 도로의 곡률이 심하면 속도를 낮추도록 설계돼 있다. 다른 차와의 간격도 스스로 조정했다. 앞 차와 간격이 좁아지자 자동으로 속력이 줄었다. 차로를 바꿀 때도 마찬가지였다. 왼쪽 차로 변경 신호를 주었는데 다른 승용차가 있자 ‘left risk(왼쪽 위험)’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자율차는 일정 거리가 확보 된 뒤에야 차로를 바꿨다.
10일 자율차 실험도시인 K-City가 문을 열었다. K-City는 자율차 기술 상용화를 위해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조성한 32만㎡ 규모의 실험도시다. 고속도로와 도심, 주차장 등 실제와 거의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다양한 주행 실험이 가능하도록 했다.
자율차가 교통수단 혁신뿐만 아니라 교통안전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자율차는 운전자의 실수 자체를 차단함을써 교통사고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다.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의 69%(2891명)가 운전자 안전의무 불이행으로 사망했다.
이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자율차도 주행 연습에 한창이었다. ETRI의 자율차는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있는 도심 구간을 집중 주행했다. 차 외부에 붙어있는 카메라 센서가 빨간불과 파란불을 구분했다. 시속 30㎞를 지키면서 중앙버스전용차로가 있는 편도 4차로의 복잡한 사거리에서 신호가 바뀌자 곧바로 정지선에 맞춰 멈췄다.
조성우 한국교통안전공단 K-City 준비팀장은 “K-City는 세계적 수준의 자율차 실험공간으로 대기업은 물론 스타트업과 대학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면서 “자율차의 상용화와 안전성 확보를 앞당길 수 있도록 실험 데이터를 축적하겠다”고 말했다.
화성=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