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정도는 다름 아니라 모르는 게 있으면 길 가는 사람일지라도 붙들고 묻는 것이다.”
―박지원, ‘북학의서(北學議序)’
이것은 ‘북학의’ 원고를 읽은 후 박지원(1737∼1805)이 격려차 박제가(1750∼1805)에게 써 준 서문의 첫 문장이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데도 아는 체하며 헛기침만 할 게 아니라 잘 아는 사람을 찾아서 적극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당한 말이지만 함의를 피부로 느끼기 위해서는 당시 조선이 매우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음을 알아야 한다. 반상(班常) 구분이 엄격했다. 양인이나 천인은 모두 ‘상놈’이라 불리며 차별을 받았다. 복식부터 현격히 달랐고 생활은 천양지차였다. 18세기까지만 해도 전체 인구의 약 40%가 노비였는데 거의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한 채 다른 사람의 소유물로 살았다. 노비를 포함해 상놈이 전체 인구의 70%를 웃돌았다. 인용한 문장 바로 뒤에 “어린 노복이 나보다 한 글자라도 더 안다면 그에게 배워야 한다”고 적은 점을 보면 박지원은 신분에 구애받지 말고 배우라는 강력한 권면을 했다. ‘길 가는 사람’에 해당하는 원문을 직역하면 ‘진흙탕 길을 가는 사람’이다. 옷에 진흙이 잔뜩 묻을지라도 개의치 말고 뛰어가서 배우라는 것이다.
조선은 청나라가 구축한 국제질서에 속국으로 참여해 왕조의 안녕을 보장받았다. 그런데도 주류 지식인은 궁벽한 한반도에 안주한 채 넓은 세상의 청나라를 오랑캐라 무시하며 배우려 하지 않았다. 박지원은 조선 엘리트의 이런 ‘우물 안 개구리’식 태도를 서문에서 신랄하게 꼬집었다. 그의 질타를 현대식으로 풀면 공기업 사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올라도 모르는 게 있으면 계약직 말단사원에게 직접 찾아가 공손히 묻고 배워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예전에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 보스인 조직은 쇠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10여 년 전에도 그런 경험을 했다. 그런데 비슷한 경험을 또다시 할까 봐 요즘 마음이 무겁다.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