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슨 현상’ 일으킨 인생 법칙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靑민정 의혹 자유민주적 질서 반대했던 조국이 어떤 사법개혁을 할지 두렵다
김순덕 논설주간
요즘 서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으로 꼽히는 조던 피터슨이 베스트셀러 ‘12가지 인생의 법칙’에 쓴 법칙 중 하나가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라.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라”라는 거다.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실수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틀렸다는 것이 입증돼도 그 방식을 고집하는 정권 때문에 성장은 정체되고 국가는 타락의 운명을 면치 못한다. 마치 한국 실정을 알고 쓴 것 같지 않은가.
미국서 ‘왜 좌파는 피터슨 현상을 두려워하나’ 같은 기사까지 나오는 것은 임상심리학자인 피터슨이 인간 본성과 사회 질서를 예리하게 꿰뚫어 봤기 때문일 터다. ‘승리한 늑대는 패자를 (더 공격하지 않고) 무시한다. 승리자가 된 늑대도 사냥하려면 협력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대목은 보수 궤멸을 위해 적폐청산에만 골몰할 게 아니라는 얘기로 읽힌다. 북한 김정은 답방을 목 빼고 기다리는 청와대에는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 자기 영역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쉽게 착취 대상이 되기 마련’이라는 대목을 읽어주고 싶다.
피터슨은 마르크스주의와 전체주의, 여기서 진화한 네오마르크시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페미니즘 같은 좌파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벗겨낸 유튜브로 스타가 됐다. 그는 현재 좌파가 보이는 행태가 과거 소련의 행적과 닮았다고 본다. 좌파 교수들이 대학을 진지 삼아 집단적 정치행동이 도덕적 의무라며 오류투성이 급진적 학문을 가르친다는 그의 지적은 1992년 울산대 교수 시절 ‘현 단계 맑스주의 법이론의 반성과 전진을 위한 시론’을 쓴 조국 민정수석을 떠올리게 만든다.
당시 조국은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했다고 해서 맑스주의의 존립 근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며 “엄존하는 현실자본주의 모순과 대결하면서… 국가법의 사멸과 인민의 자치규범의 창출을 지향”할 것을 밝힌 바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이 헌법의 영토조항 폐지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재규정,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점이 같은 해 쓴 ‘새로운 한반도 질서와 법률투쟁의 쟁점’에 등장한다. 26년 전에 쓴 논문이라고 해서 생각이 바뀌었을지는 알 수 없다. 2010년 그가 심사위원 중 하나로 ‘민주법학지’ 게재를 결정한 ‘밖에서 본 민주법연 20년’ 논문에도 조국이 쓴 대목이 그대로 인용됐다.
특히 그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것은 어떠한 수식어를 붙이든 ‘자본주의 체제의 상부구조’를 의미하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전면 배제하고 있다”고 적은 점은 눈 씻고 볼 필요가 있다. 올해 초 대통령 개헌안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문구에서 ‘자유’를 빼려고 시도하고, 역사 교과서 집필 지침에선 기어코 ‘자유민주주의’를 빼버린 이유가 여기서 드러나는 듯하다.
그 숱한 인사 검증 실패와 청와대 기강 해이에도 불구하고 여당은 조국 경질 요구가 “사법개혁을 좌초시키겠다는 특권세력의 반칙”이라고 했다. 조국만이 사법개혁을 해야 한다면 그게 대체 어떤 개혁일지 두렵기 짝이 없다.
프랑스 최초의 사회주의 노동자 정당인 사노당은 1888년 퇴역 장군 불랑제가 공화정을 무너뜨릴 위험성을 보이자 자신들이 발행하는 신문에 ‘조국(祖國)이 위험에 처하다’라며 자유주의 구하기에 나섰다. 1993년 울산대 시절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조국은 어떤 식으로 나라를 구할 작정인가.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