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핵물리학자 김상헌 박사 격정토로
● 100만 달러 받고 북핵 정보 넘긴 ‘첩자’ 만들어
● ‘흑금성’ 박채서와 일면식도 없어
● 나와 가족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소송할 터
● 흑금성 “입증할 자료 있다”
● ‘흑금성’ 박채서와 일면식도 없어
● 나와 가족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소송할 터
● 흑금성 “입증할 자료 있다”
2018년 8월 개봉한 ‘공작’은 첩보영화다. ‘흑금성’ 역을 맡은 황정민과 ‘리명운’ 역을 맡은 이성민의 열연이 돋보인다. 실화를 바탕 삼은 스릴러다. ‘흑금성’은 1990년대 한반도를 뒤흔든 공작원 박채서(65) 씨의 암호명이다. 흑금성은 2000년대에도 남북 경계선상에서 활약했다. 영화 ‘공작’의 원작은 2018년 7월 출간된 논픽션 ‘공작’이다. 논픽션 ‘공작’은 흑금성이 대학노트 4권에 눌러쓴 수기를 바탕으로 한다.
김상헌(金·憲·진상시안·84) 전 중국과학기술대 교수는 12월 4일, 6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영화 ‘공작’과 흑금성 증언은 모조리 거짓”이라고 말했다. 김 전 교수는 중국 조선족 핵물리학자다. 부모 고향은 경북 영천. 1957년 베이징대 물리학부 졸업 후 베이징대 교수로 2년간 재직하다 중국과학기술대 핵물리학부로 옮겨 은퇴할 때까지 핵물리와 플라스마물리를 강의했다.
“2018년 8월 중순 사위가 영화 ‘공작’과 관련해 한국 언론이 흑금성을 인터뷰한 기사를 읽다가 내 실명이 거론된 것을 발견했다. 사위의 말을 듣고 인터넷 검색을 해본 뒤 깜짝 놀랐다. 미국에서도 ‘공작’이 상영돼 가족과 함께 영화관에서 관람했다. 도입 부분에 조선족 핵물리학자가 등장하는데 나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영화 ‘공작’과 논픽션 ‘공작’이 나에 대해 다룬 것은 모두 허위다.”
영화 ‘공작’과 논픽션 ‘공작’에서 김 전 교수는 국군정보사령부 소속으로 한미 합동 902정보대 ‘A-23팀장’으로 일하던 흑금성에게 포섭돼 북한 핵 개발 정보를 제공한 인물로 묘사돼 있다. 논픽션 ‘공작’이 서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협조하면 100만 달러 입금하겠다”
‘공작’에 따르면 박채서 팀은 공작 요소를 물색하던 중 LG산전에서 중국 담당 부장으로 근무하던 김○○이라는 조선족 동포를 찾아냈다. 김○○에게 주목한 것은 중국과학기술대를 졸업한 휴대형 대공미사일 유도장치 전문가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제적 지원으로 김○○을 포섭해 핵물리학자인 김 전 교수와 선이 닿았다는 게 ‘공작’의 서술이다.
“중국에서는 공안의 눈길을 피하기 어려우므로 김상헌 교수를 한국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급선무였다. 김○○을 통해 가족 관계와 재정 상태를 파악해보니, 김 교수의 한 달 봉급은 미화 45달러 정도였고, 화학과 교수인 부인의 봉급도 비슷했다. 자식은 아들만 둘인데 국비장학생으로 해외 유학을 보내려고 부부 교수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에 박채서 팀장은 미국 측과 긴밀하게 협조해 연세대가 개최한 세계평화포럼 세미나에 김상헌 교수를 초청하도록 했다.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는 데는 김○○의 도움을 받았다. 표적인 김상헌 교수 부부가 한국에 체류한 기간은 단 일주일이었다.”
‘공작’이 서술한 대로라면 흑금성은 서울의 한 호텔방에서 김 전 교수와 단둘이 만나 이렇게 말했다.
“혹시 짐작하셨을지 모르지만, 저는 한미 합동정보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교수님을 초청한 까닭은 교수님이 북한 핵 개발에 참여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공작’은 김 전 교수가 핵 개발 참여를 선선히 인정했다고 서술했다. 흑금성은 김 전 교수에게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고 한다.
‘공작’에 따르면 김 전 교수는 제안에 관심을 보이며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지 입증을 요구했다고 한다.
“흑금성 증언은 허위 사실”
영화 ‘공작’ [출처 · CJ엔터테인먼트]
“옆방에서 상황을 체크하던 미국 측 요원이 들어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제안을 수락하면 김 교수 부부가 귀국하기 전 해외 계좌 입금을 완료하고, 두 아들의 미국 유학 초청이 3개월 안에 이뤄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비로소 김 교수의 말문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공작’은 김 전 교수에 대한 공작 성과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김 교수가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털어놓은 북한 핵 개발 정보는 예상보다 방대했다. 김 교수는 이와 관련된 증빙·참고 자료를 중국 주재 미국대사관 요원들을 통해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다만 그 시기는 한국 방문 뒤에 예상되는 중국 공안 감시의 눈길을 피해 두 아들이 유학 초청장을 받아 미국 유학길에 오른 뒤로 정했다. 미국 측은 이후 거의 8개월 동안 김 교수가 제공한 정보와 증빙자료를 확인한 뒤에 공작의 성과를 결론지었다. 미국 정보 당국에 의해 북한 핵 개발이 공식 확인된 것이다. 그때가 1992년 4월경이었다.”
김 전 교수의 얘기를 들어볼 차례다.
- 박채서 씨를 만난 적이 있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에 대해 당연히 알지 못한다. 한국 언론에 실린 흑금성 인터뷰 기사를 통해 ‘박채서’라는 사람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이곳에서 영화 ‘공작’을 봤으며 인편을 통해 한국에서 구입한 책에 실린 나에 관한 내용을 읽었다.”
- 1990년대 초반 연세대가 주최한 세계평화포럼 세미나에 참석했나.
“참석한 적 없다.”
- 1992년 4월이나 1991년 8월 혹은 박채서 씨가 국군정보사 공작단에 근무한 1990~1993년 한국을 방문한 적은 있나.
“1990년 8월 13~17일 제4차 아시아·태평양물리학회에 참석했다. 1990년 5월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 중국으로 돌아갈 때 친척 방문을 위해 경유 일정으로 수일간 한국에 머물렀다. 1991년 8월경과 (‘공작’에서 날짜가 특정된) 1992년 4월경에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다. 박채서가 언급한 시기에 나는 베이징에 소재한 중국과학기술대에서 강의하고 있었다. 아내는 중국과학원 산하 화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던 1987년 11월 이후 유타대 방문학자로서 미국 단기 체류를 위해 서너 차례 중국을 떠난 적은 있으나 ‘공작’에 언급된 시기에 한국에 간 적은 없다. 아내는 1992년 1월 미국에서 중국으로 돌아온 후 1994년 10월 미국 유타대 방문학자로 다시 미국으로 가기 전까지 직장인 화학연구소에 근무했다. 우리 부부가 서울을 방문했고, 북한 정보를 알려줬다는 내용은 방문한 적이 없기에 허위 사실이다.”
“법적 책임 물을 것”
김상헌 전 교수의 중국과학원 재직증.
- ‘100만 달러’ ‘자녀의 미국 유학 알선' 등을 제공받고 북핵 정보를 알려준 적이 없다는 얘기인가.
“앞서 강조했듯 박채서가 나와 아내가 한국을 방문했다고 언급한 시기에 아내는 미국 유타대 방문학자로 단기 체류하기 위해 중국을 떠난 적은 있으나 한국을 방문한 적은 없다. ‘공작’이 묘사한 내 가족에 대한 정보도 모두 거짓이다. 유학 알선, 미국 시민권 획득, 일자리 알선, 100만 달러 수수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박채서가 대북 공작원으로서 임무 수행 성과를 과대 포장하고자 일면식도 없는 나를 공작 대상으로 끌어들여 북핵 개발 정보와 ‘자식 유학’ ‘미국 시민권 획득’ ‘100만 달러’를 거래했다고 실명을 거론하면서 허위 날조했다. 한평생을 학문에만 정진했으며 중국 최고 물리학자 중 하나라는 명예와 자부심으로 살아온 내 인생을 하루아침에 돈 받고 정보를 제공하는 첩자로 만들어버렸다. 나뿐만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충격과 상처를 줬다.”
- 현재 국적은 어떻게 되나.
“중국 국적이다. 미국 영주권을 갖고 있다.”
김 전 교수는 1994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 법적 조치 등을 취할 생각도 갖고 있나.
“민·형사 소송을 진행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 같다. 미국에 체류하기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형사소송은 직접 고발하고 먼저 진술해야 하기에 장거리 여행을 무리 없이 할 정도의 건강을 되찾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민사소송은 법률자문은 끝났고, 대리인을 선정하는 단계다.”
‘흑금성’ 박채서 씨의 반박을 들어보자.
“김상헌 전 교수가 이렇게 나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 입장이 곤란해졌을 것이다. 이 건은 국내 공작이 아니고 미국 공작이었다. 김 전 교수가 친필로 쓴 내용과 공작상신서 등을 갖고 있다.”
- 자료를 공개하면 진실이 드러나겠다.
“공개하면 그 사람이 더 타격을 받는다. 미국이 세세하게 조사한 후 우리가 보고한 자료가 맞다고 한 사안이다.”
“친필, 녹음 다 있다”
- 김 전 교수는 당신과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공작원이 따로 있었다. 공작원에게 들은 내용을 인지한 것이다. 몇 가지 사실이 오인된 게 있더라. 아들 딸 등 사소한 문제다.”
- 논픽션 ‘공작’에는 ‘김상헌 교수’를 직접 만난 것으로 돼 있다.
“기술(記述)상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는데 당시 나는 공작관이었다. 공작관은 일선에 나가지 않는다. 공작원이 아니면 공작 대상을 만나지 않는다. 공작 보안에 위배되는 일이다. 공작명이 9115공작이었다. 1991년 15호 공작이라는 뜻이다. 이런 공작을 허투루 하지 않는다. 공작원이나 협조원, 정보원으로부터 부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취합했는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는 김 전 교수가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첩보를 확인했기에 공작이 시작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무엇이 김 전 교수를 위하는 것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빼도 박도 못할 흔적과 자료가 있기에 공작이 시작돼 결과가 나온 것이다. 김 전 교수가 친필로 쓴 내용, 녹음 내용이 다 있다. 아들 둘이냐, 아니냐는 사소한 문제다. 김 전 교수가 북핵 개발 여부를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줬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다.”
김상헌 전 교수는 “허위 사실 유포를 시정하라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박채서가 계속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면 내가 반박한 내용과 관련한 근거들을 낱낱이 제시해 사실임을 증명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2019년 1월 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