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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멧 없이 접이의자 앉는 헬기 정비사

입력 | 2018-12-18 03:00:00

헬기사고 정비사 사망 잦은 까닭은




1일 산불을 끄기 위해 물을 담는 작업을 하던 산림청 헬기가 추락해 기장과 부기장은 탈출하고 정비사 윤모 씨(43)는 숨지면서 정비사의 취약한 헬기 안전 실태에 대한 우려가 높다. 정비사들이 앉는 자리는 조종석에 비해 안전띠, 의자 등 안전장치가 취약하고 정비사에겐 헬멧을 지급하지 않는다. 뒷좌석에 앉아 있기 때문에 긴박한 상황에서 대응 속도도 느리다. 직종에 따라 안전에서도 차이가 나야 하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 안전띠·의자 구조 다르고 헬멧도 안 써

산림청 산불 진화 헬기 47대 가운데 27대(57.4%)를 차지하는 러시아산 카모프 헬기 T타입의 기장과 부기장이 앉는 조종석은 일체형 안전띠가 어깨, 허리, 다리를 감싸는 구조로 돼 있다. 반면 정비사가 앉는 자리에는 허리 벨트만 있다. 또 조종석은 시트가 두꺼운 고정 의자로 돼 충격 흡수가 잘되는 반면 정비사 자리는 간이의자로 돼 있어 사고 시 충격을 크게 받는다.

구미대 헬기정비과 최쌍용 교수는 “정비사들이 앉는 접이식 의자는 충격을 받을 경우 더 쉽게 튕겨 나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비사들은 측·후방 경계, 산불 진화, 응급환자 발생 시 지원, 헬기 착륙 시 보조 등의 업무로 인해 평상시에도 안전띠를 풀고 일을 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헬멧도 쓰지 않는다. 산림청의 경우 헬기 탑승 시 정비사가 헬멧을 착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최연철 한서대 교수는 “사고 시 정비사가 벽에 머리를 부딪쳐 의식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뒷좌석에 앉아 있어 조종사들과 달리 위험 상황에 대비하기가 어렵다. 정비사 A 씨는 “안전장치도 부족한 데다 조종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에 대처할 시간이 짧다”고 말했다.

○ 헬기 사고 9건에 정비사 8명 사망

헬기를 사용하고 있는 산림청 소방청 경찰청 해양경찰청에 소속된 정비사들은 헬기 운항 시 의무적으로 탑승하고 있다. 정비사가 꼭 탑승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헬기 내 업무를 감안하면 기장 부기장 외에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산림청 소방청 해양경찰청에서 일어난 총 9건의 사고로 정비사 9명 가운데 8명(88.9%)이 숨졌다. 기장 부기장 18명 가운데 9명(50%)이 목숨을 잃은 것에 비해 사망률이 훨씬 높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2013년경 사고 시 위험을 이유로 정비사들의 의무 탑승 방식을 재검토해 달라고 산림청에 비공식적으로 권고하기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산림청은 6일 뒤늦게 산림항공본부장 명의로 비행거리가 30분 미만인 경우 정비사들을 의무적으로 탑승하지 않도록 지침을 내렸다. 또 정비사석 대신 어깨·허리 벨트가 마련된 오퍼레이터석(조종 보조석)에 앉도록 한 상태다. 정비사 B 씨는 “위험 요소가 일부 제거됐지만 명문화된 규정이 마련될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