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극인 산업1부장
지난주 대통령이 고용노동부를 방문했을 때 문답을 옮긴 보도를 보고 박장대소했다. 대통령이 최저임금을 담당하는 서기관에게 “실제로 현장에서 체감해 보니 어떤가.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른가? 솔직하게…”라고 물었다. 서기관은 “민간인인 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가야 할 방향은 맞다고 생각하지만 좀 더 잘 살펴봤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했다. 다행히 대통령은 정답을 찾은 것 같다. 문 대통령은 “방향은 옳지만 너무 이렇게 (과하게 인상)하는 게 아니냐 이런 식의 생각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요즘 관료들 사이에 제일 어려운 게 보고서 쓰는 거라고 한다. ‘문제가 없지는 않은데,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는 식으로 절묘하게 줄타기해야 앞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줄타기 보고서에 넘어가면 자칫 상황 인식을 그르치기 쉽다. 대통령이 지난달 자동차와 조선업 실적 개선을 언급하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도마에 올랐던 게 한 사례다. 업계에서는 “물이 어디서 들어온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도 관료들이 머리를 굴려가며 줄타기 보고서를 쓰는 이유는 뭘까. 대통령이 제시하는 방향성에 의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후유증이 눈에 뻔히 보이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정책이 자꾸 추진되다 보니, 애매한 보고서로 책임을 피해 간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초기 잘나가던 어느 경제 관료의 말처럼, 골프 티샷을 할 때 지금은 무조건 페이드를 쳐야 한다는 생존본능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일단은 대통령 기대대로 볼(정책)이 왼쪽으로 날아가되, 결국은 페어웨이 정중앙에 안착해야 정권이 바뀌어도 무탈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나마 노무현 대통령 때는 언로가 열려 있었다.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붙이고 관료들과 끝장 토론을 했고, 납득이 되면 과감히 생각을 수정했다. 관료들도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견을 개진했다.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관료들 얘기다. 지금 청와대는 문제가 생겨도 먼저 프레임을 설정하는 데 급급하다. 소득주도성장의 폐해를 “경제 체질을 바꾸는 전환기의 진통”으로 못 박았고, 기업들의 하소연은 “원래 재벌들은 징징대는 법”이라며 내쳤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분위기에서 솔직한 보고와 정확한 상황 인식을 기대할 순 없다.
대통령은 어제 최저임금 인상 등 논란이 되는 정책 속도 조절에 나섰다.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하지만 진영 논리에 갇힌 소통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실패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다. 독일 철학자 니체가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확신’이라고 말한 의미를 새겨볼 때다. 나만 맞다는 확신에 사로잡힐수록 진실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
배극인 산업1부장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