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슈트라우스 2세(왼쪽)와 안톤 브루크너. 동아일보DB
교향곡 7번 이후 8년이 지나 발표한 교향곡 8번에서 청중의 반응은 다시 차가워져 있었습니다. 126년 전인 1892년 12월 18일 빈 무지크페어아인 황금홀에서 이 곡이 초연되었습니다.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청중은 자리를 떴고, 마지막 악장이 끝났을 때 썰렁해진 객석에서 자리를 지킨 음악가는 한 세대 후배인 작곡가 후고 볼프와 한 살 아래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뿐이었습니다.
볼프는 빈 음악원 동기생인 말러와 함께 브루크너의 추종자였지만, 이 자리에 슈트라우스가 남아 갈채를 보낸 데는 묘한 기분이 듭니다. 슈트라우스는 브람스와 친했고, 그의 부인이 브람스에게 사인을 요청하자 브람스는 슈트라우스의 악보에 ‘브람스 작품이 아니라서 유감입니다’라고 적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빈 음악계는 ‘브람스적 보수파’와 ‘바그너적 혁신파’로 갈려 있었고, 브람스는 바그너식 음악 스타일을 사용한 브루크너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새해가 밝으면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빈 신년음악회에 관심이 쏠릴 것입니다. 2019년 빈 신년음악회는 브루크너에게 애정을 보여 왔던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지휘합니다. 슈트라우스의 왈츠와 폴카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콘서트를 보면서, 슈트라우스와 브루크너의 ‘뜻밖의’ 우정도 기억해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