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대한민국 정책평가]경제분야 10대 정책 정책평가 어떻게 했나
조 씨 가게의 매출이 떨어진 건 올해 최저임금이 훌쩍 뛰면서부터다. 피자집 인근의 작은 공장과 회사들은 직원들의 시급을 올려주는 대신에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보너스와 수당을 없앴다. 그 여파로 피자집 손님도 줄었다. 최저임금 인상을 뼈대로 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이 자영업자, 기업, 소비자로 이어지고 있는 예다.
○ 최저점 받은 ‘임금 늘려 성장률 높이기’ 실험
소득주도성장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어 △주택시장 관리 △재생에너지 3020 △청년일자리 종합대책 등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정책들의 성적이 저조했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으로 저소득층의 임금 수준을 높여 소비를 늘리고 성장률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분배가 악화되며 낮은 평가를 받았다. 올해 3분기(7∼9월) 상·하위 20% 계층 간 소득 격차는 2007년 이후 1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
고려대 정부학연구소는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조절하고 직종별, 지역별 차등 인상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9·13 부동산 안정 대책을 발표한 뒤 가파르게 오르던 부동산 가격 상승세는 일단 멈췄다. 정책의 효과가 난 셈이지만 일반 국민과 전문가는 주택정책을 꼴찌에서 2번째 정책으로 꼽았다. 정부가 공급과 대출을 규제하고 과세를 강화하면서 세금으로 수요만 억제하는 근시안적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가격 급등세는 잡았지만 거래마저 ‘올 스톱’ 된 비정상적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수요 억제보다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도심 지역의 공급을 늘려 시장을 정상화하고 가격을 안정시키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연구소는 설명했다.
전반적인 청년일자리 대책 역시 ‘반쪽짜리’라는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정부가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취업 및 창업을 지원하고 있지만 현장과 괴리된 정책이어서 일자리의 양과 질을 늘리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서울의 대학을 졸업한 강모 씨(24)는 정부 지원을 받아 한 중소기업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하지만 그가 한 일이라곤 복사와 회의장에 음료수를 가져다 놓는 게 고작이었다. 그는 “정부가 일자리 수만 채우기보다는 청년이 업무를 배울 기회가 보장되는지, 야근수당은 제대로 주는지 사후적으로 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1∼3년간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대책보다는 적극적인 규제 완화로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탈원전을 뼈대로 하는 재생에너지 정책은 정책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점 때문에 낮은 점수를 받았다. 재생에너지가 원자력 등 기존의 에너지원을 대체할 수 있는지,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는 여론이 충분한지에 대한 공론화 과정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연구소는 “정책의 정당성에만 의지해 추진되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경제정책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 합의였다. 미중 무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진행된 협상이었지만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은 협상’이었다는 평가다. 협상을 통해 한미동맹이 강화되는 ‘덤’을 얻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가상통화 열풍을 큰 부작용 없이 수습한 대책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가상통화 거래 자체에 개입하지 않으면서 가상통화 관련 업체들이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통해 자정 노력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중시하는 공정경제도 대체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갑질’ 없이 공정한 환경에서 거래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다. 다만 공정거래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었다.
혁신성장의 대표 정책인 ‘4차 산업혁명을 위한 규제개혁’ 대책은 중간 정도의 점수를 받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업이 새로운 기술을 사업에 접목할 수 있도록 국회와 정보통신융합법 입법을 추진한 점은 고무적이지만 아직 마땅한 성과가 없다는 게 한계로 꼽혔다. 특정 분야에 국한된 규제완화보다는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포괄적인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계부채가 1500조 원을 넘어서며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부상했지만 정부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정부가 지나치게 대출을 억제하다 보니 서민과 자영업자 등 자금 융통이 필요한 계층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병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실질적으로 효과를 냈는지 여부에 따라 정책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 것으로 보인다”며 “한미 FTA와 가상화폐 대책처럼 정부가 불확실성을 선제적으로 제거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제분야 평가: 구교준, 이응균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 일반인-전문가 2200명 설문… 4개분야 10개씩 평가 ▼
동아일보가 고려대 정부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실시한 ‘대한민국 정책 평가’는 일반인과 전문가 대상으로 여러 단계의 자료 수집, 설문, 분석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다.
국민 삶의 질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정부 정책을 평가해 정책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취지로 2014년부터 5년째 실시하고 있다.
올해 5∼11월 진행된 정책 평가는 경제, 교육문화, 외교안보, 사회복지 등 4개 분야가 대상이다. 부처들로부터 대표적인 정책 리스트를 제출받은 뒤 동아일보 각 부서의 부처 담당 기자들과 연구에 참여한 교수들이 정책의 적정성을 따져 누락된 정책은 추가하고, 중요도가 떨어지는 정책은 빼는 보완작업을 했다. 이를 토대로 일반 국민 600명과 분야별 전문가 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연구진의 검토를 거쳐 분야별로 10개씩, 총 40개의 대표 정책을 평가 대상으로 확정했다.
이렇게 선정된 40개 대표 정책에 대해 일반인 2000명, 분야별 전문가 200명 등 총 2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4개 정책 분야별로 9개 평가지표를 가지고 5점 만점 기준으로 평가점수를 부여했다. 이어 연구진이 부처 자료와 언론 보도 등 자료를 활용해 9개 평가지표에 따른 정성평가를 했다. 마지막으로 일반인, 전문가, 연구진의 평가 결과를 가중치를 달리해 합산한 후 각 정책에 대한 최종 평가점수를 산출했다.
특별취재팀
△경제부=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송충현 김준일 최혜령 기자
△정책사회부=김윤종 김호경 기자
△정치부=손효주 신나리 기자
△산업1부=김성규 신동진 기자
△산업2부=박재명 손가인 기자
△사회부=한우신 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