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통일부. 1969년 국토통일원으로 개원해 1990년 통일원으로 바뀌었고, 1998년 지금의 통일부로 개칭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5월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 판문각에서 가진 2차 남북 정상회담 때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북한 체제를 확실히 인정할 테니 안심하고 함께 교류와 협력을 하자는 명백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1차 남북 정상회담의 하이라이트인 판문점 도보다리 밀담에서도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불안감 해소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을 것 같다.
만약 방명록에 ‘평화와 번영’ 대신에 ‘통일’이란 단어를 썼다면, 매우 어색한 문장이 됐을 듯싶다. 왜냐하면 한반도 통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나 김정은 위원장과 함께 갈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상과 체제가 다른 상황에서 통일은 이뤄질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북에 사상과 체제를 양보할 생각이 조금도 없고, 북한 역시 그렇다. 결국 통일은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 궁극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 엄청난 열세인 김정은의 처지에선 통일은 죽음과 연관되는 단어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상대와 만나 공존과 상생을 약속했는데, 이를 담당할 주무부서의 이름이 통일부인 것은 아이러니하다. 공존과 통일은 반대의 뜻이다. 그런 점에서 통일부도 명칭 변경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가령 남북교류협력부로 할 수도 있고, 남북관계부라고 할 수도 있다.
첫째는 시대정신에 맞기 때문이다. 통일은 김정은만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남쪽에서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외치던 세대가 사라져가고 있다. 그 대신 남북이 교류하고 협력하다가 나중에 여건이 되면 통일을 하자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
기자 역시 통일은 소리쳐 외칠수록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굳이 상대를 자극하며 만날 필요는 없다. 통일부는 통일이 된 뒤 만들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둘째는 통일부의 장기적 미래를 위해서이다. 통일부는 정부 부처라고 하기엔 인원과 예산이 너무 적다. 10년 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라질 뻔하기도 했는데, 보수 정권 10년 동안 크게 위축됐다. 지난해 예산은 정부 전체 예산 중 겨우 0.1% 정도인 약 4600억 원 수준. 서울의 여느 구청 예산보다도 적다.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2200억 원은 남북협력기금으로 쌓아둔 것이고, 424억 원은 인건비이다. 나머지 사업비 약 1900억 원 중에 70% 이상을 탈북자와 북한 인권 관련 항목에 지출했다. 탈북자 업무가 없었다면, 통일부는 돈 쓸 데도 거의 없다는 뜻이다.
통일부는 내년에 예산 1조 원 시대를 열려 하지만, 그래 봐야 내년 정부 예산 470조 원의 ‘몇백 분의 1’이다. 통일부가 돈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한다고 하기도 어렵다. 요즘 남북 협력 사업이 많아지고 있지만 통일부는 약방의 감초 역할을 주로 하는 것 같다. 지금처럼 가면 군사 관련은 국방부가, 철도 도로 연결은 국토교통부가 하는 식으로 주요 협력 사업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회담 지원 백업 부처로 전락할지도 모르겠다. 조직을 새로 정비하고 남북 관계 주도권을 장기적으로 확보할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통일부의 북한 상대는 통일전선부다. 이 역시 매우 시대착오적인 이름이다. 다음 남북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정신에 맞춰 두 부처를 동시에 개명해 보자고 제안한다면 북한도 선뜻 찬성할 듯하다. 새 술이라면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