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호 주연 ‘마약왕’ 마약도 정치도 못 드러낸 채 나열식 전개끝 도덕적 교훈만 남겨
영화 ‘마약왕’에서 1970년대 마약 밀수로 큰돈을 번 이두삼(송강호)이 한국여자배구협회장이 돼 선수단과 함께 환영받는 장면. 쇼박스 제공
1970년대 마약 밀수로 엄청난 돈을 벌고 권력에 가까이 간 사업가 이두삼(송강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마약왕’. 시놉시스와 ‘국가는 범죄자, 세상은 왕이라 불렀다’는 홍보 문구를 보면 넷플릭스의 최고 인기 드라마 ‘나르코스’가 떠오른다. ‘나르코스’ 역시 콜롬비아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마약왕’은 최고의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송강호가 주연을 맡고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이 연출한 올겨울 최대 기대작 중 하나. 그런데 ‘나르코스’의 기상천외함과 ‘내부자들’의 날카로움은 어디로 갔을까. 마약 밀수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사업가의 스토리에서 기대하는 건 예상을 깨는 기발한 수법이 등장하거나, 1970년대 한국 사회나 정치의 폐부를 찔러주는 풍자가 나오길 바랐다. 그러나 긴 러닝타임(139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어느 한쪽도 과감하게 밀고 나가지 않는다.
‘나르코스’는 에스코바르의 일대기를 그리면서도 상상을 뛰어넘는 그의 테러만으로도 긴장감이 고조된다. 반면 실존 인물이 아닌 1970년대 여러 마약 유통 사건을 모티브로 창작한 ‘마약왕’은 이두삼이 어떻게 마약 사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며, 로비스트 김정아(배두나)를 통해 정부와 가까운 인물이 되는지를 나열식으로 보여준다. 그가 겪는 고충은 예상 가능하다. 그래서 물 흐르듯 성공 가도에 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두삼의 일대기에 몰입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많다. 펜트하우스 파티 같은 자극적인 장면이 나오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많은 관객이 볼거리로 즐길 요소는 아니다.
마약도, 정치도, 풍자도 적극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영화가 이르는 결론은 도덕적 교훈이다. “이거(필로폰)에 빠지면 제일 먼저 잡는 게 마누라”라는 백 교수(김홍파)의 대사를 복선으로 이두삼은 조강지처 성숙경(김소진)을 버리고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런 이두삼을 쫓는 건 “나 대한민국 검사야!”라는 익숙한(?) 대사를 외치는 김인구(조정석). 오히려 이두삼이 어떻게 권력의 ‘내부자들’이 되는지를 자세히 보여줬다면 훨씬 몰입하기 쉬웠을 것 같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