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한국의 국적을 모두 가졌지만 가슴에 태극기를 새기고 싶다는 바람만큼은 확실하다. 서울 언북중 투수 문수완(14) 이야기다. 문수완의 롤 모델은 ‘송골매’ 송진우 한화 이글스 코치다. 송 코치의 역대 최다승(210승) 기록을 넘어서겠다는 그의 표정은 밝았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
여느 또래처럼 사소한 일에도 헤실헤실 웃는 장난꾸러기지만, 야구에 있어서만큼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집요하다. 서울 언북중학교 2학년 투수 문수완(14)의 이야기다.
정식으로 처음 야구공을 손에 쥔 날도 그랬다. 어린 소년은 어떻게든 야구가 하고 싶었다. 어머니의 반대로 가슴속 깊이 그 열망을 묻어만 뒀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기어이 일을 냈다. 당시 제주도에서 서울로 이사를 하며 전학을 갔고, 마침 새로운 학교엔 운명처럼 야구부가 있었다. 문수완은 다짜고짜 야구부를 찾아가 덜컥 운동을 시작해버렸다. 그런 뒤에야 감독의 힘을 빌려 어머니를 겨우 설득했다.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꾸중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괜찮았다.
“‘이제부터 야구를 한다’는 생각에 너무 기뻤다. 야구부에 들어가 캐치볼을 하고, 방망이를 돌리고, 펑고도 받았다. 공을 던지니 너무 좋더라”는 것이 마침내 야구를 시작했던 순간의 기억이다.
오직 투수만을 고집하는 이유도 그 연장선에 있다. 문수완은 “스트라이크가 들어갈 때의 짜릿함이 정말 좋다”며 수줍게 웃는다. 투수가 아닌 타자로 언북중에 진학했음에도 늘 마운드 위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입학 후 1~2달 간은 타격 훈련을 했지만, 코치와 상의한 끝에 다시 투수로 포지션을 옮겼다. 좌완 투수인 그는 직구, 커브, 슬라이더를 두루 구사한다. 오버핸드로 공을 던지는데, 그를 지도하는 황솔 코치는 “투구 폼이 예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고학년이 팀 전력의 중심이 되는 아마추어의 특성상 실전 경험은 적지만, 적절히 긴장을 즐기는 강심장을 지녔다. 최근엔 2학년이 주축으로 뛰는 추계리그에서 3위를 차지했다. 문수완은 “막상 경기에 나서면 긴장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마운드에 올랐을 때 두근두근 심장이 뛰는 느낌이 정말 재미있다. 희열이 있다”고 했다. 대신 어머니 앞에서 야구를 하는 일은 아직 어색하다. 어머니도 혹여나 아들이 부담을 느낄까 경기장을 잘 찾지 않는 편이다. 대신 매일 밤 훈련이 끝나면 학교 앞으로 직접 데리러 오는 정성으로 마음을 대신 전한다. 문수완에겐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특유의 쾌활한 성격도 문수완의 장점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는 편이다. 이국적인 외모를 지녔지만, 그로 인한 불편은 느껴본 적이 없다. 문수완은 “가끔은 친구들이 머리카락 색깔이나 예쁜 눈을 부러워 할 때도 있다”며 너스레를 떤다. 오히려 마음처럼 키가 빨리 크지 않아 고민이다. 어머니가 두부를 넣어 끓여주는 미역국을 가장 좋아하는 그는 밤 11시면 꼭 잠자리에 들어 매일 8시간동안 수면을 취한다. 하루라도 빨리 덩치와 힘을 키우기 위함이다.
한화 송진우 코치. 스포츠동아DB
문수완의 롤 모델이 궁금했다. 그는 단 한 순간의 고민 없이 까마득한 선배인 송진우 투수코치(한화 이글스)의 이름을 꺼냈다. 둘 사이엔 무려 38년이란 세월의 격차가 있다. 문수완은 송 코치의 둘째 아들인 송우현(경찰청)보다도 8살이 어리다.
“송 코치님은 누구도 깰 수 없는 200승의 대기록을 세웠다. 게다가 매너 있는 플레이를 펼치고, 공도 정말 잘 던져서 좋아하게 됐다”며 “나 역시 모두가 인정하는 투수가 되고 싶다. 송 코치님의 200승 기록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송 코치가 2006년 달성한 통산 200승(210승)은 KBO리그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이다.
언젠가 가슴에 태극기를 새기겠다는 당찬 포부도 지녔다. 미국과 한국의 국적을 모두 가진 문수완은 한국에서 프로 선수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다. 이미 미국 국적을 포기할 마음의 준비도 마친 상태다. 큰 미련이 없다. 문수완은 “반드시 국가대표 투수가 되어서 어머니께 금메달을 선물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의 나라인 미국에 대한 기억은 희미하지만, 꿈의 무대인 메이저리그를 두고도 “한 번쯤 뛰어보고 싶다”며 의지를 드러냈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