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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부랴부랴 일산화탄소 감지기 의무화… 설치-관리규정 제대로 없어 효과 의문

입력 | 2018-12-20 03:00:00

농식품부 “시행규칙 개정해 포함”… 전문가 “지속적 관리 이뤄질지 의문”
美 27개州 주거시설 설치 의무화




18일 발생한 강원 강릉시 펜션 사고는 일산화탄소 누출을 알려주는 감지기만 설치돼 있었어도 피할 수 있었던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 사고가 난 숙박시설인 농어촌 민박에 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하겠다고 했지만 감지기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설치 규정이 없어 정부 발표만으로는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뿐만 아니라 관광진흥법상의 펜션과 호텔에 대해서는 별도의 정부 대책이 없어 가스 누출 사고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많은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9일 “농어촌정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일산화탄소 감지기 설치를 농촌관광시설 기준에 포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펜션업자가 사업자 등록을 신청하거나, 정기 안전점검 때 감지기가 설치돼 있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일산화탄소 경보기는 주택이나 호텔, 펜션 등을 포함한 어떤 시설에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다만, 야영장은 텐트 안에서 숯불을 피우거나 가연 물질에 노출될 위험성이 높아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일산화탄소 경보기를 설치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했다. 이 개정법은 내년 1월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주택이나 펜션은 여전히 일산화탄소 감지기 설치가 의무사항이 아니다. 일산화탄소는 액화천연가스(LNG)나 액화석유가스(LPG) 등이 연소하며 나오는 일종의 폐가스로 일반적인 가연성 가스 감지기와는 별도로 감지기를 설치해야 한다. 현재 가연성 가스 감지기나 차단기 등은 설치가 의무화돼 있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농어촌정비법상 민박시설인 펜션에 감지기 설치 의무화를 추진하지만 관광진흥법상의 펜션 등 숙박시설에는 어떤 대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2017년 기준 농어촌민박 형태의 펜션은 2만6578개다. 반면 관광진흥법상 펜션의 경우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관광편의시설업으로 분류된 4114개 업체 중 일부가 해당 숙박시설이다. 전체 펜션에서 농어촌민박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셈이다.

해외에서는 일산화탄소 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추세다. 미국의 전미주의회연맹(NCSL)에 따르면 올해 3월 현재 알래스카 캘리포니아 등 27개 주가 민간 주거시설에 일산화탄소 감지기 설치를 규정하고 있다. 일본은 1981년에 도시가스와 LPG 등을 사용하는 모든 지하도, 지하실, 공동주택, 학교, 병원, 음식점 등의 건축물에 가스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했다. 다만, 일반 가정은 의무 설치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하는 것만으로는 실효성이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스는 종류에 따라 특성이 달라 감지기 설치와 관리 규정이 명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도시가스인 LNG는 공기보다 가벼워 천장에서 30cm 높이에 설치해야 한다. LPG는 공기보다 무거워 바닥에서 30cm 높이에 설치해야 한다. 일산화탄소는 이 같은 규정이 아직 없다.

한 소방 관계자는 “일산화탄소 감지기는 필터를 꾸준히 교체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야 하는데 각 가정이나 숙박업소에 의무적으로 설치한다고 해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의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는 일산화탄소 감지기 설치를 권고하면서도 감지기 설치만으로는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를 완벽히 막을 수 없다고 본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숙박시설에 감지기를 의무 설치하도록 하고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 / 최지선 기자 / 뉴욕=박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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