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방한 “北 여행금지 재검토”
비건이 들고온 ‘카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19일 입국했다. 비건 대표는 “내년 초 미국 지원단체들을 만나 적절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보장할 방법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건 대표는 20일 오전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시작으로 외교·안보라인 인사들과 만나 북핵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인천=뉴스1
정부 관계자는 “(미국 쪽에서) 사전에 언질이 없어서 (입장 발표는) 조금도 생각 못 했다”며 “긍정적인 조짐으로 보고 있다”고 반색했다. 26일 남북 철도·도로 연결사업 착공식과 관련된 제재 면제 여부가 핵심인 워킹그룹회의를 앞둔 상황에서 정부도 비건 대표의 발언을 반기는 분위기다.
비건 대표는 이날 6번이나 ‘검토한다(review)’는 표현을 반복해 썼다. 검토의 대상은 △민간·종교단체의 대북 인도 지원에 대한 정책 △미국 국민이 지원 물품을 전달하고 국제적 기준의 검증을 위해 북한을 여행하는 데 대한 조치 완화다. 그간 미국이 명확한 법률적 규정 없이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 단체들의 방북 또는 대북 반출물자 심사를 ‘지연’시키는 방법으로 북한을 압박해 왔는데 이를 풀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분위기가 바뀐 건 최근 들어서인 것으로 보인다. 신호탄은 지난달 말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유진벨 재단 대북지원 물자(결핵약) 제재 면제 승인이었다. 비핵화 협상 교착 상태가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라도 대화 모멘텀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 한 소식통은 “이달 초부터 대북 인도 지원 기준 완화를 통해 대북 압박 이미지도 누그러뜨리고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려는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안다”면서 “다만 본격적인 제재 완화는 아니다”라고 전했다.
분명 의미 있는 움직임이지만 비건 대표의 이번 발언이 명확히 제재 해제를 겨냥했다고 볼 수는 없다. 당장 엄격한 대북 제재의 허들을 낮추겠다는 제재 완화(ease)나 해제(lift)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선 현상 유지로 결론날 수도 있는 ‘검토’를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입장 발표를 뜯어보면 정책 검토 수요에 대해서 늘어놨을 뿐, 이로 인한 정책 변화를 분명히 예고한 것도 아니다.
변수는 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제재 유지에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상응 조치 차원으로 북한의 체면을 차려줘 대화에 호응하도록 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 북한과 당장 대화를 하긴 쉽지 않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 담길 대미(對美) 메시지에 영향을 주기 위한 미국 측 나름대로의 인센티브”라고 설명했다.
한편 전날(18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북-미 간 비핵화 관련 실천적 조치나 상응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향후 북-미 협상 재개를 촉구하는 의미로 풀이된다. 조 장관은 “내년 1분기, (특히) 2∼3월까지 비핵화가 본격 궤도에 오르느냐가 2020년까지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방향을 좌우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만큼 최근 북-미 회담은 좀처럼 실마리가 풀리지 않는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정부 고위 당국자는 “완전한 비핵화 및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과 관련해 상대가 무엇을 요구하고, 상대가 어떤 것을 조치로 취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제시도, 체계적인 정리도 안돼 있는 상태”라고 했다. 이어 “북한은 (비핵화) 조치를 취했을 때 제재 완화가 상응 조치로 제대로 확보될 수 있겠느냐는 부분에서 계산, 판단이 쉽지 않고, 고민하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상황인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황인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