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
요즘 학생들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학교 교육의 핵심이 되는 교과서가 매년 정치적 논쟁거리가 되고 있어서다. 학교 교육의 ‘헌법’이라 불리는 교육과정과 교과서 집필의 기준이 되는 ‘성취 기준’ 역시 마찬가지다. 한 해가 멀다 하고 정치세력의 입맛대로 요리되다 보니 국민으로서는 이제 무슨 맛이 진짜 맛인지조차 모를 지경이 됐다.
그간 정치가들은 교육과정이나 성취 기준 내 미세한 표현에서부터 과목명, 교과서의 전체적인 톤과 방향성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부분에서 정권의 흔적 남기기를 시도해 왔다. 작은 예로는 이명박 정부가 고등학교 ‘환경’ 과목의 이름을 정부의 녹색성장 기조를 반영해 ‘환경과 녹색성장’으로 ‘깨알 수정’한 것을 들 수 있다. ‘환경과 녹색성장’은 현 정부에서 다시 ‘환경’으로 바뀌었다.
현 정부는 올해 초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에서 ‘북한의 6·25 남침’ 표현을 빼고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했다. 논란이 커지자 ‘남침’ 표현은 살렸지만 ‘자유’는 끝내 없앴다.
요즘은 전 과목에 ‘통일’과 ‘민주시민’ 교육을 반영하겠다고 해 시끄럽다. 지난달 교육부는 “평화통일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해 빠르면 2020학년도부터 교육과정과 교과서 서술을 바꿀 것”이라고 예고했다. 예컨대 미술시간에는 통일 상상화를 그리고, 음악시간에는 통일 노래를, 가정시간에는 북한의 음식을 만들어 보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과학시간에는 열의 이동 성질을 이용한 ‘통일 마술컵 만들기’를 해보자는 아이디어도 냈다. 북한에 대한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무리수’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달 들어서는 내년부터 ‘민주시민학교’를 운영하고 중장기적으로 ‘시민’(가칭) 과목 신설을 검토하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교육계에서는 당장 “단어 자체에 이념적 프레임이 씌워져 있다”며 편향성 논쟁이 불거졌다. 그러나 교육정책의 실권을 쥔 정치세력은 교육계의 개탄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교육부조차 언제나처럼 정권의 깜빡이에 맞춰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책의 전문성과 일관성을 추구해야 할 행정부가 정치세력에 휘둘리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사회 시스템의 한계 탓이 크다.
수시로 바뀌는 정권의 좌회전, 우회전에 교육이라는 이름의 긴 버스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갈지(之)자 행보만 거듭하고 있다. 만날 논쟁을 벌이고 돈을 쏟아부어도 돌아보면 우리 교육은 늘 그 자리다. 버스에 탄 전국 630만 학생·학부모들은 멀미가 나다 못해 구토가 날 지경이지만 핸들의 회전 폭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한국 교육은 언제쯤 직진할 수 있을까. 고꾸라지지만 않아도 다행이려나.
임우선 정책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