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도관을 생산하는 두 기업이 있다. A기업은 지난해 많은 비용을 들여 상수도관의 내구성을 한층 강화시켰다. 가격은 20%가량 올랐지만 30년은 문제없이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 B기업은 별도 기술 개발 없이 같은 가격, 같은 품질의 상수도관을 계속 생산하고 있다. 이 상수도관의 수명은 대략 20년이다.
상수도관 교체를 앞둔 지방자치단체라면 어떤 상수도관을 선택할까. 장기적으로 본다면 A기업 제품을 선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다수 지자체는 B기업 제품을 선택해왔다. 최저가 제품을 선택해야 추후 감사를 받을 때 잡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국내 대다수 물 산업 관련 기업은 기술 혁신보다 생산가격을 낮추는 데 집중했다. 국내 물 산업 발전 속도가 더딘 이유다. 더욱이 국내 물 기업 4곳 중 3곳(72%)은 10인 미만 영세 사업체다. 반면 주요 선진국들은 물 산업을 유망 산업으로 꼽고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2년까지 물 산업 시장이 연평균 4.2%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물산업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정부는 ‘한국물기술인증원’을 설립해 물 기업의 기술을 국가적으로 인증해 주기로 했다. 상하수도협회 등 각 협회에서 인증을 받을 때보다 객관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인증 수준이 높아지는 만큼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수월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성능 평가를 통해 검증된 제품은 3년 동안 우수제품으로 지정된다. 우수제품을 많이 도입한 지자체는 국고 보조 사업을 우선 지원받는다. 지자체의 최저가 낙찰 관행을 없애고 우수제품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다.
또 ‘물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해 기업들을 원스톱으로 지원한다. 기업들은 내년 6월 준공되는 클러스터에서 자신들이 새로 개발한 제품 성능을 실험해볼 수 있다. 기업체가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 양성도 클러스터 내 ‘워터캠퍼스’에서 이뤄진다. 해외 판로 개척이나 창업 등 물 산업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글로벌 비즈니스센터’도 들어설 예정이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