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장편 ‘문신’ 출간한 윤흥길 작가
윤흥길 소설가는 “이 긴 작품을 쓰게 된 것은 생전 가까이 찾아뵙고 모셨던 박경리 선생이 ‘큰 작품을 쓰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이라며 “(선생이) 돌아가신 뒤에야 당부를 이루게 됐는데, 살아계셨다면 이 다섯 권짜리 소설이 출간되길 가장 기다리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학동네 제공
‘장마’ ‘완장’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으로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소설가 윤흥길(76)이 등단 50주년인 올해 신작 장편소설 ‘문신’(총 5권·문학동네·각 1만4300원·사진)을 내놓았다. 18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20여 년 전 ‘한국인의 의식구조’란 책에서 부병자자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고 회고했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자 사이에선 ‘밟아도, 밟아도 죽지만 말아라’라고 개사한 아리랑 민요가 불리었어요. 우리 민족이 가진 치열한 귀소본능을 보여주는 아리랑 민요와 부병자자 풍습이 소설의 모티프가 됐습니다.”
윤 작가는 “글로벌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역행하는 작품을 내놨지만, 우리가 거쳐 온 과거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단 생각에서 ‘낡은’ 주제를 다뤘다”고 말했다. 특히 토속적인 문장과 어휘 선택, 수사법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전라도 판소리의 정서와 율조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요즘은 우리 고유의 것을 훼손하는 TV 자막이 많아요. 그걸 보며 한국인의 정체성과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살려내는 문장으로 소중한 우리 것을 지키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우리 것을 완전히 되찾을 순 없어도 잊진 말자는 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윤 작가에 따르면 현재 한국 문학계는 “모노컬러 패션이 유행하는 거리처럼 단순하고 가벼운 이야기 중심”이다. 이런 현상은 “문학을 왜소화하고 궁핍화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인생과 세상을 모두 포용해야 할 문학이 스스로 그릇을 작게 만들고 있어요. 다양한 문학 형태가 공존해야 그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풍토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남들이 추구하지 않는 쪽을 내 나이에 맞게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소설 ‘문신’엔 독자들 눈치 볼 것 없이 내 고집대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으려 했어요. 일단 미지의 독자를 향해 손을 내밀었고, 그 손을 잡고 안 잡고는 이제 독자들에게 달렸지요.”
조윤경 기자 yuniq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