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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스쳐가는 또 하나의 삶일 뿐… TV, 이혼 소재 콘텐츠 부쩍 늘어

입력 | 2018-12-20 03:00:00


이혼을 실패나 파국이 아닌 새로운 삶의 시작으로 그리는 등 드라마에서 이혼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배우 송혜교와 박보검의 열두 살 나이 차로도 화제가 된 tvN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수현(송혜교)은 이혼 후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해간다. tvN 제공

“아마 당신은 평생 모를 거야. 이제 당신 필요 없어. 완전 개운하다.”

직장인 민모 씨(38·여)는 최근 자신의 다이어리에 이 글귀를 적어놓고 심적인 위안을 얻었다. 이 문구는 지난달 종영한 KBS 드라마 ‘최고의 이혼’에 나왔던 대사다. 실은 3년 전 이혼의 고통을 겪었던 민 씨는 뭔가 우군이 생긴 기분이었다고. 그는 “예전 드라마에선 이혼녀를 부정적으로 그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요샌 이혼을 다룬 드라마도 많고 조금은 긍정적으로 봐주는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안방극장에선 이혼을 소재로 다룬 콘텐츠가 부쩍 늘었다. 드라마, 예능 등 분야도 다양하다. 뭣보다 ‘사랑과 전쟁’처럼 치정으로 얼룩진 자극적 소재로 쓰기보단 아픔을 겪었더라도 잘 극복하고 자아를 찾는 ‘또 하나의 삶’으로 묘사하는 점이 크게 달라졌다.

일본의 동명 소설과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KBS ‘최고의 이혼’은 일상 속 소소한 충돌로 멀어지는 부부 관계를 담담하게 그렸다. KBS 제공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방영 중인 tvN 드라마 ‘남자친구’다. 여주인공 수현(송혜교)은 요즘 이혼녀들의 ‘워너비’로 불린다. 미모와 재력, ‘썸’을 타는 연하까지 모자람이 없다. 수현에게 이혼은 정치인의 딸이자 재벌가 며느리로 꽉 막힌 삶을 살아온 그에게 해방구 역할을 했다. 누구의 아내, 딸이 아닌 오롯이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산다. ‘직진남’ 진혁(박보검) 덕분에 어두웠던 성격마저 변해간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40대 여성에게 무척 인기가 높다. 타깃 시청률이 10∼13% 정도다. 특히 이혼 남녀가 모인 온라인커뮤니티에서는 “이혼한 사람만 만나야 한다는 선입견이 드라마를 보며 깨지고 있다” “TV가 본격적으로 연하 남친을 만나는 이혼녀들의 현실을 다뤘다” 등 반응이 올라왔다.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의 손동규 대표는 “요즘은 중년 남성이 미혼 여성을 찾는 문의보다 중년 여성이 미혼 남성을 찾는 문의가 많다. 상담하는 여성들이 그런 관계를 다룬 드라마를 자주 언급하는 것도 인상적”이라고 했다.

전남편을 저주하거나 시댁에 복수하는 ‘아내의 유혹’ 식 클리셰도 이젠 옛날 얘기다. 이혼은 그저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는 장치로 나오기도 해, 굳이 왜 그런 설정을 넣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지난달 말부터 방영한 MBC 드라마 ‘붉은 달 푸른 해’에서는 교통사고로 괴로워하던 차우경(김선아)에게 이혼은 스쳐 가는 하나의 시련일 뿐이다. tvN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두 번의 이혼을 겪었다는 건 진우(현빈)의 냉소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수단에 그친다.

자극적인 면을 거둬낸 대신 디테일을 살린 점이 눈에 띈다. 지난달 종영한 ‘최고의 이혼’은 이혼 과정을 그린 2018년판 ‘사랑과 전쟁’이지만 훨씬 세련된 방식을 택했다. “불륜이 없어도 일상의 엇나감이 쌓여 멀어지는 이별의 과정이 잘 담겼다”는 평이 많았다. 이혼서류가 가장 ‘실사’에 가깝다는 얘기마저 나왔다. 10월 종영한 SBS 예능프로그램 ‘무확행’은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고 위로하는 이혼남 4명이 출연하기도 했다. 개그맨 김준호의 “아직 마음이 따갑지만, 이혼은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말도 화제가 됐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젠 이혼이란 소재가 금기를 넘어 일상의 소재로 쓰임이 다양해지고 있다”며 “특히 드라마에서 주된 서사가 아닌 ‘양념’으로 쓰이는 건 그만큼 이혼에 대한 시청자 인식이 변화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