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취소된 빈 공간을 그대로 전시해 화제가 된 글래스고현대미술관(GoMA)의 내부. 18세기 거상의 대저택이었던 이 건물은 1996년 미술관이 됐다. GoMA 제공
개막 직전 전시가 갑작스레 취소됐다. 당연히 전시된 작품도 없었다. 그런데 이 전시 공간을 5개월 동안 10만 명이 넘게 찾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도 손꼽히는 글래스고현대미술관(GoMA·Glasgow Gallery of Modern Art)에서 벌어진 일. 5월부터 10월까지 열린 이 전시 아닌 전시 타이틀이 바로 ‘이 전시는 취소되었습니다’였다.
지난달 29일 찾은 GoMA에서 전시 기획을 담당했던 큐레이터 윌리엄 쿠퍼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들어봤다. 당시 원래 예정됐던 전시는 네덜란드 출신 작가 말리 멀의 개인전. 스코틀랜드 첫 개인전이었던 작가는 미술관과 수차례 협의했지만 예산 등의 문제에서 합의가 어려웠다. 결국 작가가 전시를 취소한 뒤 미술관은 휑한 민낯이 드러난 공간을 관객들에게 개방했다.
전시가 취소되자 새로운 발상으로 ‘전시 아닌 전시’를 기획한 GoMA의 큐레이터 윌리엄 쿠퍼. 글래스고=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사실 GoMA로서도 이건 상당한 모험이었다. GoMA는 지역 정부의 예산과 기부로 운영된다. 담배 거래상이었던 윌리엄 커닝햄의 대저택을 개조해 1996년 개관한 뒤, 유럽에서도 주목받는 현대미술의 허브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정부 예산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이런 시도가 ‘세금 낭비’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쿠퍼 큐레이터는 “현대미술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비판은 항상 있어 왔다”며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은 작품 감상이 아니었어도 예술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됐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실은 국내에서도 올해 갑작스러운 전시 취소 사태가 발생한 적 있다. 8월 열릴 예정이었던 서울 세종문화회관의 ‘에드가 드가: 새로운 시각’ 전이 작품 배송 문제로 개막 이틀 전에 취소됐다. 결국 이미 예술의전당에서 선보였던 민화전을 재개최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쿠퍼 큐레이터는 “극소수의 미술관을 제외하면 전시 취소는 언제나 겪을 수 있는 일”이라며 “대체 전시든 뭐든 중요한 건 미술관이 관객을 위한 문화적 기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에서 미술 전시는 관객에게 무엇을 주고 있을까.
글래스고=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