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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지원 물꼬 튼 비건, 판문점 깜짝 방문 ‘北 응답하라’ 메시지

입력 | 2018-12-21 03:00:00

美 비핵화 전략 ‘유화책’ 선회하나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사진)가 방한 이틀째인 20일 판문점을 찾았다. 8월 23일 취임한 뒤 한국에 5차례나 왔지만 판문점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날 입국 일성으로 인도적 대북 지원 및 미국인 북한 방문에 대한 정책 재검토 의사를 밝힌 데 이어 깜짝 행보를 펼친 것이다. 북한을 향해 강한 대화 의지를 발신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비건 대표는 이날 오전 수행직원 1명과 함께 비무장지대(DMZ) 내 판문점으로 향했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비건 대표는 사전에 우리 정부와 유엔군사령부에 방문 의사를 전달했고, 일정을 공개하지 말라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진행된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 상황 등을 직접 보고 싶어 했다는 후문이다.

비건 대표가 판문점을 찾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등 북측 관계자를 만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카운트파트는 없지만 내년 초에는 시작되기를 바라는 ‘미래 협상장’을 미리 찾은 셈이다. 북-미 간의 물밑 접촉이 빈번히 이뤄졌던 판문점에 비건 대표가 갔다는 것 자체가 북에 던지는 메시지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비건 대표가 이틀 연속 적극적으로 발신한 메시지를 북에 대한 일방적인 ‘대화 구애’만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북한이 대화에 일절 응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미국이 인도적 지원에 대한 유연성을 보여줌으로써 대화 판에서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의 책임을 북한으로 돌릴 수 있는 명분을 쌓는다는 것. 최 원장은 “미국 단체들의 인도적 지원을 위한 방북을 풀어준다고 당장 (제재 압박 유지) 대세에 지장도 없기 때문에 판세를 끌어갈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잇따른 메시지를 통해 한국 정부를 향해서도 생색 낼 명분을 쌓고 있다. 경협과 교류사업이 이뤄지는 가운데 “미국이 남북관계 개선 속도를 저해하고 있다”는 책임론을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한국 정부가 미루고 있는 800만 달러 대북 인도적 지원 집행에 새로운 움직임이 있을지 주목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판문점을 다녀온 비건 대표는 20일 서울 모처에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업무만찬을 곁들인 수석대표 협의를 가졌다. 21일 오전 10시부터는 워킹그룹회의에 참석해 비핵화와 한미 외교적 현안, 남북협력과 관련한 제재 면제 등을 논의한다.

외교가에선 이번 한미 워킹그룹회의가 향후 북-미 대화의 판세를 전망하는 가늠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건 대표는 이미 입국장에서 회의 후 추가 대북 메시지를 낼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장 26일 철도·도로 연결 착공식에 필요한 제재 면제 여부뿐만 아니라 면제 승인을 기다리는 남북교류 사안들이 회의 테이블이 오를 것으로 알려졌다.

미 측의 유화적 제스처가 잇따르는 가운데 북한도 반응을 내놨다. 조선중앙통신은 20일 개인 명의의 논평을 통해 미국의 제재 해제가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미국의 진정성을 판별하는 시금석이기 때문에 문제시(중요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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