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비어 부모 ‘北에 배상금 소송’ 美법정서 눈물의 폭로
귀환 엿새만에 숨진 아들 지난해 6월 13일(현지 시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사진 맨 왼쪽)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채 북한에 억류된 지 18개월 만에 고향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로 돌아와 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신시내티=AP 뉴시스
1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법원 22호실. 북한에 억류됐다가 의식불명 상태로 풀려난 뒤 6일 만에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 프레드 웜비어 씨의 목소리가 크게 떨렸다. 비교적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던 그는 아들의 상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는 듯 몇 차례나 입술을 깨물었다.
이날 재판은 웜비어 유족이 북한을 상대로 낸 11억 달러(약 1조2400억 원)의 배상금 청구소송의 증거청문 심리로 진행됐다. 70명 가까운 웜비어 가족과 친구 등이 법정을 채운 가운데 시작된 재판에서 가족들이 차례로 증인석에 앉았다.
마르지 않는 눈물 웜비어는 병원에 입원한 지 6일 만에 숨졌다. 사진은 올해 1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참석한 웜비어의 부모가 슬픔에 빠진 모습. 이들은 19일 북한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 재판에서 아들을 기다리며 보냈던 고통의 시간을 증언했다. 워싱턴=AP 뉴시스
어머니 신디 웜비어 씨는 “의식불명 상태로 돌아온 아들은 내가 아는 오토가 아닌, 영혼 없는 괴물(monster)이 돼 있었다”며 “초점 없는 눈을 뜬 채 경련을 일으키는 아들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다”고 흐느꼈다. 북한에서 오토를 데리고 나온 조셉 윤 전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비행기에서 먼저 내리면서 울고 있었다는 뒷이야기도 이때 나왔다.
오토는 병원으로 옮겨진 후에도 고열에 시달렸고, 상태가 악화되면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야 했다고 한다. 병실에 누워 있는 깡마른 오토의 두 다리 사진 등이 법정 스크린에 공개되자 방청석에서는 탄식과 한숨,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웜비어 씨 부부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며 “이제는 더 이상 북한이 두렵지 않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여기에 서 있는 이유”라고 밝혔다. 이들은 “북한은 악마”라면서 “정의를 찾기 위해, 그리고 이런 짓을 한 사람들이 책임을 지도록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다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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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북한 측 관계자는 한 명도 출석하지 않아 피고석이 텅 빈 채 재판이 진행됐다. 심리는 이날로 사실상 종결됐다. 법원은 조만간 판결 날짜를 밝힐 예정이다.
뒤늦게 법정에서 재점화된 오토 웜비어 사건은 북한을 향해 또 다른 인권압박 카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미국 북한인권위원회(HRNK) 주최로 워싱턴에서 열린 북한인권 토론회에서 데이비드 맥스웰 민주주의수호재단 선임연구원은 “앞으로 대북 협상에 인권 주제를 꼭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정은 lightee@donga.com·김정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