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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눈/패트릭 크로닌]북-미 관계의 감속 패턴

입력 | 2018-12-21 03:00:00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

지난 1년간의 실험적인 대북 외교는 획기적인 돌파구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시사했지만 아직 확실한 건 없다.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관계에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번 달 서울을 방문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이지만 남과 북은 이미 튼튼한 소통 채널을 구축했다. 개성에 공동연락사무소를 설립했고 북한 철도를 공동 조사했으며 군사 간 신뢰를 쌓는 전례 없는 조치들을 취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양국 관계를 새로운 궤도 위에 올려놓기 위해 싱가포르에서 만난 지 수개월이 지났음에도 북-미 관계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국 실무협상이 지지부진해 보이지만 내년 1, 2월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열기 위한 준비는 계속되고 있다.

북-미 협상의 감속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진전을 가로막는 실질적인 장애물과 정치적인 장애물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장애물의 핵심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언제나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였다는 사실에 있다. 미국의 역대 행정부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평양 지도자들은 정권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수십 년간 대량살상무기(WMD) 개발에 막대한 돈을 투자해 왔다. 김 위원장의 수소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 과시는 미국이 ‘최대의 압박’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정치적 장애물은 실질적 장애물보다 더 심각해 보인다. 막대한 수준의 신뢰 부족 문제가 남아 있다.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북한은 더 이상 핵 위협이 아니다”라거나 “김 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라고 말하는 대통령을 두고 그의 과장법을 비판한다. 하지만 두 가지 사안과 관련해 진전이 필요하다. 첫째는 김 위원장이 오랜 적을 신뢰할 수 있도록 북-미 관계를 다시 정의하는 것이고, 둘째는 평양발 WMD 위협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북한으로부터 완전한 핵시설 목록을 요구하는 것은 대화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조건이 됐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요구하는 미국을 ‘날강도’라고 비판한다. 북한이 단기간 내에 이를 제출한다 하더라도 불완전하거나 속임수가 가미된 목록일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 정가도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최종 목표가 단계적인 진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점차 깨닫고 있다.

김 위원장이 대화를 통해 이득을 취하기를 원한다면 더 속도감 있게 의미 있는 비핵화 단계를 밟아 나가기 시작해야 한다. 북한은 핵심적인 핵·미사일 시설이라고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몇몇 시설을 검증을 통해 폐쇄하는 것 이상의 행보를 보여야 한다. 더 이상 핵심적이지 않은 시설로는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시험장, 그리고 영변의 핵물질 생산 시설을 꼽을 수 있다.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아직까지 베일에 싸여 있는,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미사일 프로그램의 상당 부분을 묶어둘 것을 약속해야 한다.

몽골 혹은 베트남에서 열릴지 모르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새로운 북-미 관계와 FFVD를 진전시키는 결과물을 가져오게 될까? 동맹과 필수적인 국방을 희생시키지 않는 차원이라면 외교는 계속해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보상은 분명해야 하지만 유예된 형태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최대의 압박은 유지돼야 하며, 대화가 효과적으로 진행되지 않을 때는 최대의 압박이 적극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가장 중대한 불확실성 중 하나는 북한의 의도다. 김 위원장이 평화 행보를 취하며 너무 무리를 한 것일까? 얻어낼 수 있는 이득보다 리스크가 더 크다고 생각해 발을 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2018년은 북한과의 오랜 냉전으로 인해 만들어진 꽁꽁 언 마음이 깨지는 극적인 장면들이 연출된 한 해였다. 하지만 평화의 동력을 유지하고 튼튼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작업 앞에는 더 큰 어려움들이 기다리고 있다.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CNAS)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