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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형준]폐 끼치기 싫어하는 일본도 공유숙박 전면 허용했는데

입력 | 2018-12-21 03:00:00


박형준 국제부 차장

지난달 온 가족 5명이 일본 도쿄를 다녀왔다. 인원수대로 숙박료를 받는 일본 특성상 호텔을 이용하려면 최소 1박에 40만 원을 내야 했다. 경비를 줄이고자 공유숙박업체 에어비앤비를 통해 1박에 20만 원을 내고 일본인 거주 원룸을 통째로 빌렸다.

체크인했더니 집주인은 가족 5명의 여권 정보를 달라고 했다. 심지어 온 가족 얼굴 사진도 찍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수차례 에어비앤비를 이용했지만 이처럼 까다로운 적은 없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일본에선 올해 여름부터 도심 가정집을 이용해 공유숙박업을 하는 게 합법화됐다. 내 집은 적법 숙소다. 주위에 폐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숙객 정보를 꼼꼼하게 받는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한국보다 앞서 일본이 공유숙박을 전면 허용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일본인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낯선 이방인을 자기 집에 들이길 꺼린다. 심지어 친한 친구여도 집에 초대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일본이 올해 6월 15일 주택숙박사업법(일명 ‘민박신법’)을 시행하면서 공유숙박을 전면 허용했다. 까다로운 여관업 영업 허가를 얻을 필요 없이 누구나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에 신고만 하면 자기 집을 돈 받고 외부인에게 빌려줘도 된다. 한국은 농어촌 지역에서만 내·외국인에게 집을 제공할 수 있고, 서울 등 도시에선 외국 관광객에게만 빌려줄 수 있다.

일본 정부는 2010년대 중반 숙박시설 부족과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해 공유숙박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당시 “손님 다 뺏긴다”며 반발하는 호텔과 여관업계, 그리고 프라이버시를 방해받기 싫어하는 국민 정서가 큰 걸림돌이었다.

일본 정부는 기득권층 설득 작업에 먼저 나섰다. 또 2016년 1월 도쿄 하네다공항 인근 오타구를 ‘민박 특구’로 지정하며 제한된 지역부터 공유숙박을 테스트했다. ‘최소 6박’이라는 조건을 달아 단기 숙박 위주의 기존 업체 피해를 최소화했다. “새로운 형태의 숙박이 기존 업체들에도 추가 관광객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관광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정부 차원에서 외국 관광객 유치에 나섰다. 일본 방문 외국인 관광객이 2013년 사상 처음 1000만 명을 넘었고, 올해 3000만 명을 돌파했다. 매년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서 호텔마다 방이 꽉꽉 차자 기득권층은 공유숙박 전면 시행에 별 반발을 하지 않았다.

‘푼돈에 이방인들에게 집을 내주다 보면 각종 사건사고가 생긴다’는 부정적 국민감정도 점차 완화됐다. 민박신법에 따르면 집주인은 소음 및 위생 관리 대책을 제출해야 하고, 숙박명부를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공유숙박 집은 퇴출된다.

공유숙박이 활성화될수록 청소업체, 집 수리 및 인테리어 업체 일감이 늘어났고, 민박 이용자와 집주인이 공존하도록 현관과 욕실을 2개씩 만든 공유숙박용 주택 등 새로운 사업도 생겨났다.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내년에 공유숙박을 내국인에게까지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숙박업계는 공유숙박 저지를 위해 단체행동에 나설 태세다. 정부가 신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기존 집단이나 세력이 반발하고, 그러면 정부는 신사업을 늦추거나 ‘없던 일’로 하는 악순환이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

이미 일본이 하고 있는 변화나 혁신도 실천해 내지 못한다면, 일본을 앞서기는커녕 따라잡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박형준 국제부 차장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