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자영업자]文정부 네번째 자영업 대책
폐업 식당서 내놓은 집기들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줄을 잇는 가운데 20일 광주 광산구에 있는 한 중고용품 업체에 식당에서 폐업한 뒤 내놓은 싱크대 냉장고 등이 빼곡히 쌓여 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중고용품이 들어와도 잘 팔리지 않아 영세한 중고용품 업체는 문을 닫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정부는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자영업 대책에 처음으로 자영업 단체의 목소리를 반영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 회장은 “민간단체와 같이 협의했다는 점에서 이번 자영업 대책은 파격적”이라며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산업 전반에 걸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현재 자영업자들이 가장 고통받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대책은 빠져 있어 핵심 문제를 외면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보증을 받아 금융회사 대출을 받은 뒤 갚지 못하고 있는 부실 채권 4800억 원을 내년까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매각하기로 했다. 캠코는 채무자의 변제 능력을 평가해 채무의 30∼90%를 감면해줄 계획이다. 이어 2021년까지 4000억 원의 빚을 같은 방식으로 감면해 줄 계획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빚 탕감 정책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자영업자 김모 씨(65)는 “한계 상황에서도 열심히 상환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은행 대출을 받아서라도 갚고 있는데 못 갚겠다고 손든 사람들은 탕감해 준다니 그 판단 기준은 무엇이냐”며 한숨을 쉬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부 자영업자들이 채무를 탕감받는다 하더라도 다시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되면 실효성 없는 대책에 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대책에는 개별 자영업자의 연체 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 있는 ‘맞춤형 채무조정제도’ 도입 방안도 담겼다. 연체가 우려되는 차주에 대해서는 ‘상시 채무조정제도’를 적용해 준다. 연체가 발생한 차주에게는 채무감면율을 지난해 29%에서 2022년 40% 이상으로 높여주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세 번에 걸친 자영업 종합대책을 통해 △카드 수수료 인하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임대료 인상률 상한 인하 등 각종 수수료, 세제, 임대료 인하를 추진했다. 네 번째 나온 이번 대책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자영업자의 역량 강화를 비롯한 지속 성장과 혁신에 방점을 뒀다.
창업(신사업창업사관학교)부터 성장(상권 활성화와 소상공인 복합지원센터), 퇴로·재기(폐업지원센터)까지 생애주기별 생태계를 조성하는 방안이 대표적인 예다. 모든 상가 건물이 상가임대차보호법의 적용 대상이 되도록 ‘환산보증금’을 2020년까지 폐지하고, 철거·재건축 시에는 우선입주요구권과 퇴거 보상을 인정한 것은 자영업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한 사안이다.
하지만 이번 대책이 중장기적이라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으로 존폐 기로에 선 자영업자에게 실질적 효과를 주기 힘들 것이란 지적도 있다. 소상공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6개월 동안 최저임금 유예 같은 실질적 방안이 빠져서 아쉽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 대책에 국회에 계류 중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포함시킨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복합쇼핑몰의 영업시간 제한 규제를 담은 이 법이 통과될 경우 복합쇼핑몰에 입점한 70% 가까운 또 다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