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규슈 그랜드루트
고온 고압의 온천 수증기가 굴뚝을 통해 공중으로 배출되는 장면. 여기는 일본에서 가장 크고 최고라 불리는 온천타운 규슈의 벳푸. 지구의 11개 온천 천질 가운데 10개를 갖춘 온천 천국으로 저 풍경은 ‘100년 이내 사라지지 말아야 할 풍경’(일본)으로 선정된 벳푸의 진면목이다.
그렇다면 규슈(네 큰 섬 중 서남단 것)는 어땠을까. 에도시대 규슈의 9소국(小國)은 에도를 해로(세토내해)와 육로(도카이도)로 오갔다. 모지(기타큐슈시)∼난바(오사카시)는 해상(446km), 난바∼에도는 육상 루트. 모지는 현재 부관페리가 오가는 혼슈 최남단 시모노세키(下關·야마구치현)와 마주한 규슈 최북단 항. ‘관문관리청’이란 모지(門司)의 뜻풀이 그대로 ‘일본지중해’ 세토내해로 진입하는 선박을 통제하던 곳이다. 그런 지정학적 이유로 규슈의 육로는 이 모지로 향했다. 그런데 메이지유신 이후 변화가 일었다. 구심점이 벳푸로 옮겨간 것인데 근대화로 열리게 된 온천관광이 세계적인 온천타운을 중심으로 발달해서다.
아소-구주국립공원의 유후산 아래 쓰카하라 고원 전망대의 풍경. 왼편 위가 온천휴양지 유후인이고 오른편 길은 23.3km 거리의 벳푸와 유후인을 잇는 현도11호선(오이타자동차도로). 규슈 그랜드 루트는 저 유후인에서 히타로 이어진다.
규슈 그랜드 루트의 세 곳은 지형과 역사, 매력이 제각각이다. 벳푸는 지옥탕 순례에 다양한 테마파크(아프리칸사파리, 기지마고원 놀이공원, 다카시마야 원숭이공원)와 쓰루미다케(해발 1300m)의 벳푸만 전망대(케이블카)를 지닌 해안 도시. 반면 유후인은 높은 산에 둘러싸인 해발 470m 분지의 옛 정취 짙은 산간마을에서 온천을 즐기는 휴양지다. 그리고 히타는 267년간 에도시대에 막부가 직할영지로 삼았던 심심산중의 고도. 교토의 귀족이 거주하며 남긴 화려한 문화 덕분에 ‘리틀 교토’라 불린다.
히타: 중심 거리 마메다마치엔 당시 영화를 가늠케 하는 상점(술도가 간장 된장 양조장)이 여직 성업 중. 그 배경은 ‘수향(水鄕)’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된 데서 찾는다. 이곳은 산간의 여러 물줄기가 모여 드는 분지. 당시는 강물이 물자 수송의 주역이던 시절로 수로(水路)는 지금의 고속도로. 그러니 각지 산물의 집하장이자 거래시장이고 모여든 상인 간에 거금이 돌았는데 히타는 그 자체로 상업은행 역할을 했다. 즉, 막부가 파견한 귀족이 상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막부 금고를 채웠던 것이다.
‘규슈 그랜드 루트’는 이렇듯 각기 다른 세 곳을 산큐패스 특급, 쾌속버스로 찾는 ‘느린 여행’이다. 렌터카 여행에선 기대할 수 없는 여유와 감상이 여기선 최고의 가치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제 막 시작된 전인미답의 흥미진진한 여행 루트다. 누구보다 먼저 그 매력을 즐기고 숨겨진 진가를 세상에 알리는 건 오직 나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니 올겨울 여행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여기로 떠날 것을 권한다.
▼물의 고향 히타의 매력에 빠지다▼
가메노이버스 다나카 노부히로 사장
가메노이버스 다나카 노부히로(田中信浩·사진) 사장의 이 말은 ‘규슈 관광의 모든 길은 벳푸로 통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이웃한 벳푸와 유후인은 세계적인 온천휴양지지요. 반면에 히타는 아직 생소합니다. 하지만 틀림없이 좋아할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다나카 사장은 벳푸나 유후인, 한 곳에 그치지 말고 편리한 가메노이버스로 부담 없이 편안하게 히타를 찾을 수 있게 이 루트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리틀 교토’라 불리는 히타는 에도시대 귀족문화의 유산이라 할 만합니다. 수향(水鄕)이라고도 불리는데 물과 자연의 어울림이 그만이어서지요. 182년 된 사케 양조장 군초(薰長)와 삿포로맥주 양조장이 그 물로 술을 빚습니다. 전통의 야타카부네(屋形船)놀이(식당처럼 지은 배에서 가이세키 요리 즐기기)도 그 강에서 즐깁니다.”
그는 한국인 여행자가 가메노이버스의 최고 고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지옥탕이 몰린 간나이의 버스센터에 들러보세요. 한글 안내도 잘돼 있고 과자와 커피도 드립니다. 2월엔 산큐패스 한국인 여행자 전용 지옥탕 순례버스(3650엔)도 무료 운행합니다.”
▼아부라야의 열정으로 데워진 벳푸▼
가메노이버스 창업자 아부라야 구마하치 동상(사진 위). 벳푸역 앞이다.1928년 가메노이버스 창업 당시의 아부라야 사장과 여승무원. 뒤로 포드자동차를 개조한 지옥탕 순례버스가 보인다. 가메노이버스 제공
그는 오이타현 사람이 아니다. 관광업자도 아니었다. 미곡도매상으로 서른 살에 오사카로 진출해 투기사업으로 거부가 된 사업가였다. 그는 ‘아부라야 장군’이라 불린 ‘큰손’이었다. 그런데 그의 손은 실제로도 솥뚜껑만 했다. 그래서일까. 4년 후엔 알거지가 됐고 무일푼으로 화물선 선창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도미(渡美)했다. 그가 귀국한 건 마흔여섯 살 때(1909년). 그런데 거긴 오사카도, 고향 우와지마(에히메현)도 아닌 벳푸.
2년 후 ‘신의 한 수‘가 등장했다. 가메노이 호텔 개업(1911년)이었다. 그 한 수, 역시 큰손다웠다. 고객은 일본인이 아니었다. 전 세계, 그것도 부자들. 동시에 국내 광고도 개시했다. 비행기로 오사카 상공에서 광고전단을 살포하는 방식으로. 미국에서 본 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후지산 정상 광고판 등장도 이즈음. 1928년엔 미국에 진출했다. 할리우드 스타들의 거리 선셋 불리바드에서 대규모 퍼레이드를 벌였다. 그때 또 역사가 씌어졌다. 핫피(겉옷 위에 걸치는 일본 전통의 얇은 옷)의 등판에 ♨를 붙인 것인데 온천 지도 부호를 상업적으로 활용한 세계 최초의 케이스였다.
하지만 아이디어의 백미는 아직 등장 전. 하이라이트는 ‘벳푸 지옥순례(Hells‘ Tour)’였다.
이건 벳푸의 여러 지옥 탕을 차례로 들르는 투어. 지금도 벳푸의 명물로 성업 중이다. 그의 총기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순례 버스를 미국 포드사에서 도입하고 거기에 미모의 여성 가이드를 태워 안내하는 것이었다. 그게 1928년. 가메노이 버스는 이렇게 창업돼 올해 90주년을 맞았다.
그는 벳푸에 지금도 건재하다. 벳푸역 앞 광장에 양팔을 펼치고 망토를 휘날리며 아이들 앞으로 달려가는 모습의 동상이다. 복장은 오스트리아 목동 것을 닮았는데 그건 당시 지옥순례버스 운전기사 유니폼. 벳푸시는 수시로 동상에 옷을 입힌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그런데 올해는 예외다. 럭비선수 차림을 하고 있다. 내년 가을 일본 전국서 펼쳐질 럭비월드컵을 겨냥한 관광 마케팅이다. 오이타현엔 인기 최고의 올블랙스팀(뉴질랜드) 경기가 배정됐고 그의 영원한 맞수 월러비(호주)가 여기서 훈련해 이걸 바탕으로 월드컵 특수를 노리는 전략이다. 아부라야의 마케팅 DNA를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벳푸(일본오이타현)=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