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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만큼 청년도 배려해달라”

입력 | 2018-12-23 08:53:00

심층분석 | 노령화보다 저출산
노령인구 증가보다 출산율 감소가 더 큰 문제…노인 복지 예산이 아동·청소년 예산의 10배




[shutterstock]


2017년 8월 한국은 본격적인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노년층이 늘어나는 만큼 사회가 부양해야 하는 부담도 커진다. 특히 노인 복지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국내 복지 예산의 20% 이상은 노인에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노인이 많은 나라가 아니다. 전체 인구 대비 노령인구 비율을 따지면 대다수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친다. 오히려 청년층과 중년층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를 부양하는 비율은 줄어들고 있다. 노년층이 늘고 있지만 비경제활동인구의 또 다른 축인 14세 이하 인구 비율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등 노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전체 노령인구 수, 부양인구 비율 등을 고려하면 아직은 우리 사회가 노령화를 버틸 만한 힘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히려 지금은 합계출산율이 1명 수준으로 떨어진 저출산 문제를 노령화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인은 아직 많지 않다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노인들. [변영욱 동아일보 기자]

우리 사회에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인식이 번진 이유는 노령화 지수가 높기 때문이다. 노령화 지수란 유소년층(0~14세) 인구에 대한 노년층(65세 이상) 인구 비율을 나타낸 수치다. 한국은 2016년 노령화 지수가 100%를 돌파했다(100.1%). 아이보다 노인이 더 많다는 뜻이다. 노령화 지수의 증가세도 가파르다. 통계청의 ‘2016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00년 노령화 지수는 35%에 불과했으나 16년 만에 3배가량 오른 것. 이렇게 노령화가 심화되면 그만큼 청·장년층(15~64세)의 부양 부담이 커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게다가 미래 경제활동을 해나갈 인구인 청소년이 감소하는 만큼 현 2030세대가 더 큰 부담을 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전체 인구 대비 노령인구 비율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지수(HDI)만 봐도 한국은 여타 선진국에 비해 노인이 적은 나라다. HDI는 UNDP가 매년 각 유엔 가입국의 교육 수준, 1인당 소득, 평균수명 등을 기준으로 삶의 질을 점수로 개량화한 수치다. 2015년 한국은 51개 고도성장국가 가운데 18위로 HDI가 높은 편이다. HDI 집계에 따르면 한국의 생산인구(15세 이상~64세 이하) 대비 노령인구 비중은 18%로 일본(43.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미국(22.3%), 영국(27.6%), 프랑스(30.6%) 등 50위권 국가 대부분이 한국보다 노령인구 비중이 높았다. 2015년 통계청 통계에서도 한국의 노령인구 비율은 18.8%로 큰 차이가 없었다. 

물론 한국보다 노령인구 비율이 낮은 나라도 있다. 아랍에미리트(UAE·1.3%), 카타르(1.4%), 쿠웨이트(2.6%), 바레인(3.2%), 브루나이(6.1%), 칠레(16.0%), 싱가포르(16.1%) 등 7개국. 싱가포르와 칠레를 제외하면 전부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다. 노령인구 비율이 한 자릿수에 머무는 나라는 높은 출산율 덕분이다. 어린 인구가 많으니 자연스레 노령인구 비율이 떨어지는 것. 

우리 사회의 경우 부양해야 할 인구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 추산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부양인구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부양인구 비율이란 노령인구(65세 이상)와 청소년인구(14세 이하)를 더한 뒤 이를 생산인구로 나눈 값이다. 1960년대 부양인구 비율은 80~90%대를 유지했지만 2000년대 들어 50%대로 떨어졌다. 2008년에는 37.8%로 내려왔고, 2017년에도 36.2%로 계속 감소했다. 

그 이유는 노령인구가 늘어나는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청소년인구도 줄어들었기 때문. 2008년 청소년인구 부양 비율은 23.8%. 하지만 9년 만에 18.0%로 줄어들었다. 한편 노령인구 부양 비율은 같은 기간 14%에서 18.8%로 늘었다. 실제로 한국은 UNDP의 HDI 상위 60개국 가운데 청소년인구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다. 이 통계에서 한국의 청소년인구 비율은 19.2%. 상위 60개국 가운데 한국보다 청소년인구 비율이 낮은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다. 중국 자유경제특구인 홍콩만 한국보다 낮은 16.4%를 기록했다. 결국 우리나라의 노령화 지수가 높은 이유는 노인이 많아서가 아니라 분모가 되는 청소년층이 적기 때문이다.

고령화 버틸 체력이 있다

서울 강서구 미즈메디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들이 신생아들을 살피고 있다.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물론 현재 노령인구 비율이 낮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의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 전후세대로 불리는 1차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 2차 베이비붐 세대(1969~75년생), 1차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세대인 베이비붐 에코세대(1979~85년생) 등 3차례의 노령인구 증가를 앞두고 있는 것.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금 노령인구 비율이 낮은 것은 폭풍전야에 가깝다. 인구가 가장 많은 1958년생이 노령인구에 편입되기 시작하면 한국의 노령인구 비중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향후 30년간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령인구 비율이 빠르게 늘어도 여타 국가의 부양인구 비율에 비하면 낮은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통계청 인구추계에 따르면 2045년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의 비율은 35.6%에 달한다. 2015년 18.8%였던 것을 감안하면 30년 만에 16.8%p 늘어나는 것이다. 한편 유소년인구 비율은 같은 기간 13.8%에서 10.1%로 3.7%p 감소한다. 

합산하면 2045년 한국의 부양인구 비율은 45.7%. 매우 높아 보이지만 2015년 선진국의 부양인구 비율에도 미치지 못한다. 2015년 HDI 상위 51개국 중 2045년의 한국보다 부양인구 비율이 낮은 나라는 말레이시아(43.6%), 벨라루스(43.4%), 바하마(41.3%), 키프로스(40.6%), 싱가포르(37.5%), 오만(30.1%) 등 6개국에 불과하다. 여타 국가는 대부분 부양인구 비율이 2015년 이미 50%를 상회했다. HDI 1위인 노르웨이는 52.2%, 미국은 50.9%, 일본은 64.4%였다. 일본은 현재 노령인구 비율이 43.3%로 30년 뒤 한국 수치를 크게 상회한다. 

노인층이 늘어나는 만큼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단 한국 노인층은 퇴직 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집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30.6%로 34개 회원국 가운데 아이슬란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75세 이상 고령자의 고용률은 17.9%로 1위였다. OECD 평균치인 4.8%의 3배가 넘었다.

오히려 급한 것은 청소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2018 조선업종 및 경력직·중장년 희망일자리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참가업체 안내사항을 살펴보고 있다. (위) 경기 수원시 한 노인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이 체조를 하고 있다.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뉴스1]

사법부에서는 정년 연장도 고려하고 있다. 11월 30일 대법원에서 육체노동자 정년(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조정하자는 전원합의체 공개 변론이 열렸다. 이날 공개 변론에서 대한변호사협회는 “노동 가동연한을 55세에서 60세로 상향한 판결이 나온 후 30년이 경과한 현 상황에서 평균수명이나 경제활동 참가 인구의 연령 분포 추이 등 고령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의 여건을 고려한다면 60세보다 상향 조정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의견을 냈다. 근로복지공단도 “사망 혹은 더는 일할 수 없어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노동 가동연한을 65세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노년층 고용률이 높은 대신, 빈곤율 역시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같은 통계에서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6%로 1위를 기록했기 때문. 하지만 이는 통계의 함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OECD 기준 노인 빈곤율은 연금과 근로소득으로만 산정한다. 따라서 10억 원 이상의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더라도 딱히 소득이 없다면 빈곤한 노인으로 간주된다. 연금 소득이 많은 OECD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연금 소득이 낮기 때문에 빈곤율이 높은 것으로 나온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월 발표한 ‘다양한 노인빈곤지표 산정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외 주거와 자산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따졌을 때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21%였다. 이 보고서는 ‘빈곤하다고 분류된 노인 중 절반 이상은 자산을 따져보면 실제로는 빈곤을 겪고 있지 않다. 더구나 빈곤 노인 중 25% 이상은 보유자산이 전체 인구의 보유자산 평균을 상회했다’고 밝혔다. 

노령인구가 아직 자생력이 있다면 부양이 필요한 청소년인구의 상황은 어떨까. 일단 빈곤율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같은 기간 청년(19~29세) 빈곤율은 7%가량으로 노인층에 비해 한참 낮았다. 18세 미만 아동의 빈곤율도 8%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인에게 쏠린 복지 예산

하지만 통계에 국내 실정을 더하면 빈곤율이 떨어지는 노년과 달리, 아동 및 청년인구의 빈곤율은 훨씬 높아진다. 정은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발표한 ‘아동빈곤 현황과 정책방향’ 보고서는 ‘2013년 기준 아동 가구의 약 4%가 기초보장 수급가구 혹은 차상위 지원을 받는 가구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는 빈곤 아동은 약 53만8000~65만1000명으로 추산된다. 즉 절대빈곤 상태에 있는 아동 가구의 약 3분의 2 이상이 빈곤 사각지대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청년층은 일하면서도 가난했다. 한국복지패널 조사에 따르면 일을 하는데도 빈곤한 근로빈곤 계층이 전체 청년의 5.1%였다(2015년 기준). 소득 빈곤을 겪는 청년이 6.3%이니 빈곤한 청년은 대부분 비정규직 혹은 정규직으로 일하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것. 고용이 불안정하거나 근로빈곤을 겪는 청년은 전체 청년의 3분의 1가량(32.6%)이었다. 

주거 환경도 마땅치 않았다. 청년층의 주거빈곤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심각한 수준이었다. 주거빈곤이란 월소득 대비 임차료 비중이 20% 이상인 경우와 최저주거 기준(인당 주거 면적 13㎡, 1인 가구는 14㎡) 이하의 집에서 사는 경우를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집계에 따르면 주거빈곤을 겪는 가구의 비율은 2.3%(2015년 기준)였으나 청년 1인 가구의 주거빈곤 비율은 10.8%에 달했다.

저출산 예산? 눈 가리고 아웅

아동 관련 예산 규모는 노인 복지 예산에 비해 턱없이 적다. [뉴스1]

정부도 노년층보다 저출산 문제 해결에 힘을 쏟은 것처럼 보인다.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따르면 저출산 관련 예산이 노인 관련 예산보다 많다. 정부의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따르면 2015년부터 10년간 저출산 관련 예산은 총 108조4143억 원, 고령사회 대책 관련 예산은 총 89조867억 원으로 전자의 규모가 더 크다. 

하지만 정부 계획안을 뜯어보면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과는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정책도 많다. 저출산 대책은 크게 △청년 일자리·주거대책 강화 11개 정책 △난임 등 출생에 대한 사회적 책임 강화 관련 15개 정책 △맞춤형 돌봄 확대·교육 개혁 10개 정책 △일·가정 양립 사각지대 해소 11개 정책이다. 

큰 내용만 보면 전부 저출산 관련 정책인 것 같지만, 세부 정책에는 비정규직 지원 강화, 중소기업 여건 확충, 공교육 역량 강화, 근로감독 시스템 등 저출산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거시적 정책이 외려 더 많다. 이 때문에 예산 규모가 커진 것. 고령사회 대책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고령 예산 외에 장교·부사관 중심 병력 구조 정예화, 해외 유학생 유치 등 고령사회와는 무관한 정책이 많다. 저출산 대책은 사실상 ‘국민 삶의 질 개선 대책’에 가깝고, 고령사회 대책은 ‘저인구 시대 대비책’으로 옮겨야 이해가 쉽다. 따라서 노인 및 청소년 지원 규모를 확인하려면 지원 대상과 규모가 확실한 복지 예산을 비교하는 편이 정확하다. 

복지 예산에서는 확실히 청년과 아동보다 노년층 지원액이 압도적으로 많다. 2018년 아동·청소년 보건복지 예산 총액은 약 1조6779억 원이다. 통계청의 인구 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청소년인구는 약 899만 명. 청소년 인당 연간 18만6640원을 가져가는 셈이다. 한편 노인 보건복지 예산 총액은 11조7677억 원으로 아동·청소년 예산에 비해 10배 넘게 많다. 같은 기간 노령인구는 총 712만 명으로 노인 인당 165만2766원씩 예산이 배정된 셈이다. 

김성일 KG제로인 연금연구소 소장과 정창호 신한금융투자 퇴직연금 컨설팅 팀장은 공동 저서 ‘사라지는 미래’에서 ‘저출산은 표가 없고 고령화는 당장의 표밭이다. 이러니 위정자들이 한정된 예산에서 고령화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펴는 것’이라고 평했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69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