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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목형 기술에 3D프린팅 접목… 정밀도 높여 매출 4배로

입력 | 2018-12-24 03:00:00

[‘Made In Seoul’ 만드는 사람들]<1>문래동 ‘정수목형’ 김의찬 대표




《 뉴욕, 도쿄 등 세계 주요 대도시에서 최근 ‘도심 제조업’이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도심의 기존 제조업에 첨단 기술을 접목하고 도시 브랜드를 더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진화시켜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도시 브랜드 상승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안경이나 스웨터도 ‘메이드 인 뉴욕’을 내건 제품은 가격을 2배로 받는다. 경기 침체와 일자리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우리가 경제 회복의 새로운 돌파구로 도심 제조업 활성화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메이드 인 서울’을 세계적 브랜드로 키워낼 해법을 4회에 걸쳐 모색해 본다. 》
 

김의찬 정수목형 대표가 최근 3차원(3D) 프린터로 찍어낸 다양한 제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 기업은 3D 프린터를 활용한 이후 생산 효율성이 오르고 매출이 크게 상승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울에 눈이 내린 이달 13일. 작은 가공공장들이 모인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골목길을 돌아 찾아간 ‘정수목형’의 문을 열었다. 목형(木型) 작업장답게 나무 자재들이 작업장 한쪽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작업장에서 가장 바삐 움직이는 것은 나무를 깎는 기계가 아닌 3차원(3D) 프린터 7대였다. 3D 프린터는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식물성수지(PLA)를 재료로 톱니바퀴 같은 기계부품을 만들었고, 매끈한 곡선면을 가진 사슴 모양의 장식품을 찍어냈다.

정수목형은 나무를 깎아 만드는 전통적인 목형 기술에 3D 프린팅 기술을 접목한 기업이다. 목형, 주물, 주조 등 가공업 공장 1300여 곳이 모인 문래동이지만 3D 프린팅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곳은 정수목형이 거의 유일하다.

김의찬 정수목형 대표(55)는 고교 시절 목형과 금형 기술을 배운 후 1982년 문래동에서 일을 시작했다. 문래동은 한때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호황기가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옛날 산업을 하는 옛 동네로 인식되면서 문래동은 쇠락해갔다. 김 대표가 일했던 공장도 일감이 갈수록 줄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그는 2013년 직접 공장을 차리며 3D 프린터를 구입했다. 그는 “오랫동안 제조업을 해온 사람들은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는 게 보통인데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3D 프린터 구입 후 오십의 나이에도 3D 설계 교육을 직접 받았다.

과거 제조업에 첨단 기술을 접목하는 것. 도심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서울시가 첫손에 꼽는 전략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올 7월 세 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혁신성장을 선도하는 미래특별시로 만들기 위해 서울의 도심 제조업 활성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박 시장은 최근 본보와 만난 자리에서 “도심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청년층을 많이 유입시킬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을 도심 제조업에 끌어들이려면 정수목형처럼 첨단 기술을 결합해야 한다. 이는 또 첨단 기술을 접하기 쉬운 대도시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정수목형은 과거 목형 수작업으로 만들던 기계부품 시제품이나 장식품 등을 현재는 3D 프린터로 만든다. 제품은 더 정교해지고 작업 시간은 줄었다. 목형보다 더 정교한 금형 제품과 비교하면 비슷한 정밀도로 만들면서 생산 단가는 10분의 1 미만으로 줄일 수 있다. 김 대표는 “지난해 기준으로 일반 목형 공장보다 4배 정도 많은 연간 매출을 올렸다”고 전했다. 생산 효율성이 커지다보니 일감이 몰린 덕분이다.

안정적인 가업 승계가 가능해진 것도 첨단 기술 도입이 가져온 효과다. 김 대표의 아들은 올해 28세다. 그는 현재 전문적으로 설계를 공부하고 있다. 아버지가 일군 사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구상 중이라고 한다. 김 대표는 “문래동의 다른 공장에서도 2세들이 나와서 같이 일하는 모습을 쉽게 보지만 대부분은 아버지는 쉬고 자녀는 아버지가 해오던 작업을 그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부모 세대가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2세들도 가업을 발전시키는 노력을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김 대표는 제조업에 새로운 기술을 과감히 도입하는 것이 제조업 밀집 지역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