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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통상임금 소급 여부’ 27일 첫 판결… 재계 “임금 추가지급 불확실성 해소되길”

입력 | 2018-12-24 03:00:00

회사부담 너무 크면 소급 안하는 ‘신의성실의 원칙’ 기준 제시 주목




“그동안 덜 준 임금을 소급해 지급하라.”(노 측)

“임금 부담이 과도해 경영에 타격이 크다. 지급할 수 없다.”(사 측)

정기 보너스를 통상임금으로 규정한 2013년 통상임금 대법원 판결 이후 새로운 통상임금 기준에 따라 그동안 밀린 임금을 지급하라는 청구 소송이 줄을 잇고 있다. 현재 소송 진행 중인 사건만 100여 건으로 재계에서는 ‘통상임금 소송 제2라운드’로 불린다.

이런 가운데 자동차부품업체 보쉬전장 근로자 57명, 다스 근로자 30명이 각각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첫 대법원 판결이 27일 내려진다. 재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내년부터 있을 2라운드 소송전의 향배를 가를 시금석으로 보고 있다.

이에 앞선 2013년 12월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소송에서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을 갖춘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통상임금은 휴일·야근수당 등 법정수당과 퇴직금을 계산하는 기준이다. 정기 보너스 등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회사가 지급해야 할 임금 부담이 커진다. 이 때문에 당시 대법원은 “소급 청구를 할 수는 있지만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에 따라야 한다”는 절충안을 내놓았다. ‘근로자 측 요구액이 지나치게 커서 회사의 존립이 위협받거나 심각한 경영 위기가 발생할 정도라면, 신의칙을 위반한 권리 남용이니 밀린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2라운드 소송전의 관건은 이 신의칙의 적용 기준이다. 이른바 ‘경영 위기의 판단’ 기준을 무엇으로 결정하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법원마다 회사의 경영상태를 당기순이익만 고려할지 이익잉여금(사내유보금)도 함께 고려할지를 두고 제각각의 해석을 내놓고 있다.

보쉬전장 사건의 경우 1심과 2심 모두 “짝수 달에 지급된 상여금이 통상임금이고, 총 400여 명에게 추가로 지급해야 할 임금총액이 100억∼110억 원”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1심은 “100억∼110억 원이 해당기간(2009∼2013년) 누적 당기순이익(44억 원)보다 많다”며 경영상 어려움을 인정했다. 하지만 2심은 “회사가 해당기간 매년 66억∼159억 원의 미처분 이익잉여금을 이듬해 사내유보금으로 이월해왔음을 감안할 때 경영상 어려움은 없다”고 노 측 손을 들어줬다.

다스 소송에서는 1, 2심 모두 “회사의 추가 임금비용은 177억∼200억 원인데 해당기간(2009∼2013년) 누적 당기순이익은 약 1500억 원으로 13%에 불과하다”며 노 측의 추가 임금 청구권을 인정했다.

이 외에도 아시아나항공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두산모트롤 금호타이어 만도 등이 1심과 2심에서 각각 엇갈린 판결을 받았다.

이 때문에 재계는 27일 대법원 판결에 주목하고 있다. 회사 경영상황 판단을 당기순이익만 고려할지 이익잉여금 등도 고려할지 등에 대한 최종적 판단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에 대한 구체적이고 예측 가능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금 사정이 좋은 기업은 신의칙 부정, 자금 사정이 나쁘면 신의칙을 인정하는 모양새지만 자금 사정에 대한 판단이 그때그때 달라 경영에 애로가 크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다시 좋아질 수도, 나빠질 수도 있는 현재의 경영상태를 가지고 수년 전 노사 간 합의사항의 효력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한 10대 그룹 고위 관계자는 “이익잉여금 등을 고려해 신의칙을 판단하면 기업으로서는 투자와 연구개발이 위축되고 결국 노사 모두의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
 
::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

법률관계 당사자는 상대방을 배려해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방법으로 권리 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원칙. 대법원은 2013년 “회사의 경영 사정이 나쁠 때 근로자들이 그동안 덜 받은 임금을 소급 청구하는 것은 신의칙을 위배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판사의 자의적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는 비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