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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하임숙]장관의 인색한 발걸음, 가벼운 발걸음

입력 | 2018-12-24 03:00:00


하임숙 산업2부장

“기업들하고 함께 가야죠, 파트너로서.”

김상희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얼마 전 여기자협회 초청 포럼에서 한 말이다. 워킹맘이 많은 여기자들 앞에서 7월에 발표했던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를 위한 핵심과제’를 다시 설명하는 자리였다.

부모의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개선돼야 출산율이 오른다, 그러려면 아빠도 육아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남성 육아휴직이 늘어야 하지만 연봉이 상대적으로 높은 남편의 월급이 줄어선 안 된다, 정부 재정으로 다 지원하긴 힘드니 기업이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게 ‘파트너로서 함께 간다’는 의미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을 중시하는 바뀐 언행으로 화제가 되고 있지만 정작 정부 정책은 정반대인 경우가 종종 있는 요즘이다. 그러니 장관급 수장이 ‘기업과 함께 간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 일단 반가웠다.

사실 기업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부모의 워라밸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여성 직원이 많은 유통기업들이 앞장서고 있다. 롯데는 작년부터 ‘남성 육아휴직제’를 도입했다. 남성 직원이 4만 명인데 1100명이 작년에, 1900명이 올해 통상임금의 100%를 받고 한 달간 육아휴직을 썼다. “4만 명 중에는 이미 아이를 다 키운 직원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몇 년만 지나면 해당 직원들은 거의 다 쓸 것”이라는 게 기업의 이야기다.

CJ는 올해부터 학령기 자녀를 둔 직원들이 3월 한 달 동안 ‘자녀 입학 돌봄휴가’를 쓰게 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다. 진정한 ‘사회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자녀를 제대로 돌볼 시간이 없는 맞벌이 엄마가 한 달이라도 쉰다면 아이 손잡고 학교에 다녀오고, 동급생 엄마들을 사귈 시간도 생길 것이다. 여성 68%, 남성 60%가 이 제도를 이용했다. 이 휴가를 사용했던 한 여직원은 “회사에 대한 애정이 샘솟았다”고 했다. 같은 부서에서 2명 이상 이용자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내년엔 2∼4월에 걸쳐 이 휴가를 쓸 수 있게 제도도 보완했다.

대화는 자연스레 이미 잘하고 있는 기업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김 부위원장은 “우리도 잘하는 기업을 찾아가서 격려해주고 싶지만 그게 하필 롯데라…”고 말했다.

롯데는 현 정부가 보기에 ‘문제적 기업’일 수 있다. 하지만 장관의 행보는 대통령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행위다. 그러니 저출산대책을 고민하는 위원회의 수장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롯데를 찾아가야 한다. 다른 기업들을 ‘자발적으로 참여’시키기 위해선 잘하는 기업은 무조건 칭찬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수단이 있겠는가.

김 부위원장의 인색한 발걸음과 반대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얼마 전 ‘가벼운’ 발걸음으로 빈축을 샀다. ‘한 집 건너 편의점’을 열지 못하도록 거리제한 규정을 두는 한국편의점산업협회의 자율협약안을 승인하는 자리에 참석한 바로 그날 편의점주들의 시위 현장을 찾았기 때문이다. 공정위 내부에서조차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협약을 승인한 당일에 기업을 압박하는 시위 현장을 찾아가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말렸다고 한다.

대통령이 경제 정책에 관한 메시지를 완전히 바꿔도 장관들이 자꾸 엇박자를 내는 건 이해관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집권 기간 내 최대한 성과를 내 ‘성공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대통령의 목표라면 정치인 장관들은 ‘내 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을 도모하는 게 더 큰 목표이리라. 그러나 지금은 경제가 엄중한 상황이다. 기업을 파트너로 삼아 앞뒤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성과를 내야 다음도 있지 않을까.
 
하임숙 산업2부장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