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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110km 날아오는 ‘코브라 서브’…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입력 | 2018-12-24 03:00:00

현대캐피탈 파다르 공 받아보니






크리스티안 파다르(현대캐피탈)는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서브왕에 등극할 태세다. 3라운드까지 역대 최고인 세트당 0.87개의 서브 에이스를 성공시키고 있다. 천안=박영대 기자sannae@donga.com

키 197cm에 몸무게 100kg의 그가 뛰어오르는 순간 아내와 갓난아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만화 ‘진격의 거인’의 실사판이 따로 없었다. 네트 위로 드러난 그의 화난 듯한 얼굴과 허벅지만 한 팔뚝은 거인이 출몰해 인간을 잡아먹는 만화 속 한 장면이었다. 달아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주문을 외웠다. “먹고사는 게 다 그렇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 ‘서브왕’ 파다르

19일 현대캐피탈 배구단의 베이스캠프인 충남 천안시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지난 시즌(세트당 서브 에이스 0.691개)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서브 부문 1위를 달리는 크리스티안 파다르(22·현대캐피탈)의 서브를 직접 받아봤다.

그는 이번 시즌 3라운드(23일 기준)까지 0.87개(이하 세트당)의 서브 에이스를 올린 독보적인 ‘서브왕’. 2005년 V리그 출범 이후 이 부문 역대 최고 기록은 2015∼2016시즌 당시 삼성화재 소속이었던 그로저의 0.829개. 그때 빼곤 누구도 0.7개를 넘어보지 못했다. 지난 시즌 서브 부문 5위(1.142개)에 그쳤던 현대캐피탈도 이번 시즌 파다르를 영입하며 1위(1.93개)로 올라섰다. 역대 팀 최고 기록(2016∼2017시즌 1.49개) 경신도 바라본다.

파다르가 19일 충남 천안시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에서 스파이크 서브 하는 장면을 연속으로 잡았다. 파다르는 공을 띄우고 달려가 도약한 뒤 높이 3.6m에서 공을 때린다. 천안=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좀 더 앞으로요. 거기서 오른쪽으로 한 발짝 더.”

15m 정도 떨어진 상대 서브 라인에서 파다르는 마치 표적에 영점을 맞추듯 손가락으로 기자의 위치를 조정했다. 기자는 ‘카운터펀치’를 기다리는 샌드백이 된 기분이었다. 얼마 후 그가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왼손으로 공을 하늘 높이 던져 올렸다. 높이가 5m는 넘어 보였다. “퍽” 하는 소리로 체육관이 흔들렸다. 그가 공을 때리는 높이(타점)는 3.6m. 폭격기처럼 공을 내리꽂는 파다르의 모습은 웬만한 강심장이라 하더라도 뒷걸음치게 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좋은 리베로의 조건으로 위치 선정, 볼 컨트롤 능력과 함께 자신감을 꼽는 이유를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속도 측정기에 찍힌 속도는 시속 110km가량. 실제 경기에서 그의 최고 구속은 120km를 넘어간다. 혹 기자가 다칠까봐 약간 살살 친 것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그의 공은 상하좌우로 요동쳤다. 살아 있는 코브라 같았다.

동아일보 김재형 기자가 파다르의 스파이크 서브 받기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볼은 손을 맞고 옆으로 튀어 나갔다. 천안=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파다르의 영업비밀

그가 때린 15번의 서브 중에 기자가 선 위치에서 한 발짝 거리로 날아온 공은 5번. 이 중 세 번 기자의 팔에 공이 닿았다. 두 번은 엄지, 한 번은 손목 위 10cm 부분이었다. 그 마지막 한 번의 ‘정확한’ 리시브가 나왔을 때 기자는 펄쩍 뛰었다. 팔의 아픔조차 가실 정도로 기뻤다. 파다르에게 뛰어가 자랑하듯 “서브 하나를 받은 것으로 해도 되나”라고 묻자 “아니다. 당신이 ‘받은 것’이 아니라 내가 맞힌 것이다”라는 말이 돌아왔다. “헉∼.”

이날 파다르가 밝힌 서브의 비밀은 끊임없는 ‘자기 관리’였다. 그는 매 시즌 서브 능력이 좋아졌다. 우리카드 시절(2016∼2017시즌, 2017∼2018시즌)부터 꾸준히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며 몸을 키운 파다르는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로 이적하기 전에 복근 단련에 집중했다. 유연성을 길러 파괴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틈틈이 스트레칭도 한다. 현대캐피탈이 밝힌 그의 체지방률은 4.5%. 근육질 운동선수 평균이 약 8% 정도니 근육밖에 없는 셈이다. 온몸이 근육인 그의 서브가 강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할 정도다.

파다르는 쉬는 시간마다 경기 동영상을 보며 다른 선수들의 장점을 눈으로 살핀다. 오른손으로 높게 공을 올리고, 네 발자국 뛰어 적당한 높이에서 상하로 회전하도록 공을 때리는 ‘파다르식 서브 메커니즘’이 실제 경기 때 오차 없이 이루어지도록 끊임없이 연습하는 집념도 빼놓을 수 없다. 왕좌는 쉽게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한 점 차로 치열한 대결을 이어갈 때 저에게 서브 기회가 오면 긴장하기보단 오히려 즐거운 마음이 듭니다. ‘이제 내가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천안=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