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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 통해 선발되는 ‘시민참여 연극’ 인기

입력 | 2018-12-26 03:00:00

미추홀구 소극장서 2008년 시작… 11번째 프로젝트 ‘나의 초상’엔
홍미영 전 부평구청장 등 6명 참여… 2, 3개월 연습 거쳐 연기실력 발휘




23일 밤 인천 미추홀구 ‘작은 극장 돌체’에서 홍미영 전 인천 부평구청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이 시민참여 연극 공연을 앞두고 연기 연습을 하고 있다. 6명의 시민이 28∼30일 ‘나의 초상’을 공연한다. 김영국 채널A 스마트리포터 press82@donga.com


23일 오후 10시 인천도호부청사 바로 옆 ‘작은 극장 돌체’(인천 미추홀구). 주택가 골목엔 어둠이 드리워 있었지만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소극장인 이곳은 심야 공연 연습을 위해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다.

무대에 오른 6명이 한글 초급자처럼 ‘가갸거겨∼’ 발성 연습을 하고 뱃심을 키우기 위해 기마 자세로 소리를 질러댔다. 훌라후프를 돌리고 발차기를 하는 등 신체단련 훈련도 했다. 또 크게 웃다가 우는 흉내를 하는 감정 발산 연습도 이어졌다. 연극계 속어로 일명 ‘또라이 훈련’이었다. 무대가 낯설기만 한 시민 5명이 연극인으로 변신하기 위해 20일 넘게 맹연습 중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매일 오후 10시경에 모여 다음 날 오전 1시가 넘어서까지 연습을 거듭하고 있다. 또 다른 한 명의 전문 연극인이 같은 무대에서 이들의 연기를 거들었다.

작은 극장 돌체가 2008년부터 시작한 시민참여 연극의 11번째 프로젝트인 ‘나의 초상’에는 6명이 출연한다. 시민참여 연극은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시민들이 2, 3개월 연습을 거쳐 한 편의 연극을 선보이는 프로젝트다.

이번엔 18년 된 친목모임(고&고) 회원으로 평소 친하게 지내는 여성 4인방이 참여했다. 홍미영 전 인천 부평구청장(63)과 김말숙 인천지속가능발전협의회 회장(56), 여성운동가 이명숙 씨(57), 전직 경찰공무원 하병희 씨(66)가 비련의 ‘유령 여인’ 역할을 맡는다.

이들은 ‘나의 초상’ 작품 속에서 자살한 여주인공의 내면을 전달하는 여인 1, 2, 3, 4로 각각 출연해 자살한 여인의 다중적인 내면을 드러낸다. 주인공은 생전에 우아한 여인 1, 도발적인 여인 2, 순종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여인 3, 문학적인 여인 4의 성격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 2 역할을 맡은 김 회장은 1기 프로젝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에 이은 두 번째 출연이어서 무대 적응을 잘한다는 평가다. 동료 연습생들이 “평상시 수줍음이 많은데 무대에선 거침없이 대사를 던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며 부러워했다. 홍 전 구청장은 “시의원, 국회의원, 구청장 등 오랜 정치인 생활을 통해 굳어진 말투와 행동거지가 잘 바뀌지 않는다”며 “‘가면 인생’을 벗고 나 자신을 찾으려는 심정으로 연기에 몰두하려는데 잘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50년 경력의 전문 연극인 손민목(70), 고교 교사 이형우 씨(49) 등 남성 2명도 이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 씨는 10년 넘게 작은 극장 돌체를 정기 후원하다 처음으로 연기에 도전하게 됐다. 유령 여인 4명과 대화를 이어가기 때문에 외워야 할 대본 분량이 가장 많다. 전문 연극인 손 씨는 여주인공이 살던 고택 관리인이어서 연극 초반과 마지막 장면에만 등장한다. 전문 연극인은 감초 역할만 하고, 아마추어 시민 연극인들이 작품 전체를 이끌어 간다.

“우리는 영원히 진실을 볼 수 없단 말인가요. 자기 시야에 계속 갇혀서 바깥을 넘겨다볼 수 없다는 겁니까. 항상 숨 막히듯 살아야 한단 말인가요.”

이날 남주인공 이씨의 절규가 터져 나오는 장면을 지나면서 연기자들이 극 중 인물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대본을 놓고 연기를 하다 대사를 까먹는 실수도 되풀이됐다.

연기지도를 하는 박상숙 작은 극장 돌체 대표(59)는 “공연 도중 대사를 잊어버리면 머릿속이 하얗게 될 수 있는데, 틀려도 티를 내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그냥 이어가라”고 다독여 주었다.

‘나의 초상’은 28일 오후 7시 반, 29∼30일 오후 4시 반, 7시 반 작은 극장 돌체에서 공연한다. 후원 회원은 예약만 하면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일반인은 관람료가 3만 원이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