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美 대북정책에 구체적 청사진 안보여… 베트남 등 적극 활용해야”

입력 | 2018-12-26 03:00:00

[2019 신년 글로벌 인터뷰]<2>듀카키스 前 美민주당 대선후보





미국 매사추세츠 3선 주지사 출신이자 1988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공화당의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맞붙었던 마이클 듀카키스 노스이스턴대 교수. 그는 동아일보의 ‘2019 신년 글로벌 인터뷰’에서 자신의 정적이던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해 “국제적 감각이 탁월했다”고 후한 평가를 내린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선 “또 다른 냉전을 몰고 오고 있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브루클라인=김정안 특파원 jkim@donga.com

5일 미국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국장으로 엄수된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41대) 장례식에서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던 대표적 장면이 있다. 전·현직 대통령 5명이 나란히 서서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이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뒤 백악관 집무실을 떠나며 후임 빌 클린턴 전 대통령(42대)에게 전했다는 손편지도 장례 기간 다시 화제가 됐다. 편지엔 “이제 당신의 성공이 곧 미국의 성공이다. 행운을 빈다”라는 ‘정적(政敵)의 따뜻한 격려’가 담겨 있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치 보복 없이 국정이 순항하고, 퇴임 후엔 과거의 정적과 친구가 되는 미국 대통령들의 모습은 한국 정치에선 아직 꿈같은 이야기이다.

매사추세츠 3선 주지사 출신인 마이클 스탠리 듀카키스 노스이스턴대 정치학 교수(85). 그는 1988년 미국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나서 부시 전 대통령과 경쟁했던 인물이다. 당시 거친 네거티브 공세를 받고 백악관 입성에 실패했던 그는 부시의 대표적 정적이었다.

13일 오전 보스턴 외곽 브루클라인에 있는 그의 자택을 찾았다. 현관에서 기자를 직접 맞은 그를 따라 들어간 응접실의 한쪽 벽은 가족사진으로 장식돼 있었다. 맞은편 벽난로 옆 책장엔 법률과 역사 서적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스스로를 ‘열정적인 역사학도’라고 밝힌 그는 평소 소설은 읽지 않는다고 했다. “더 드라마틱한 스토리와 가르침이 역사에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인터뷰는 부시 전 대통령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부시 전 대통령과는 그야말로 정적이었지요?

20대 초반 유엔 대표단 소속으로 1955년부터 16개월간 한국에서 근무했던 그는 한국인에 대해 “늘 열정적이고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한 민족”이라고 말했다. 브루클라인=김정안 특파원 jkim@donga.com

“그는 국제적 감각이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와 평화적으로 냉전을 마무리했고 초당적 협력 또한 중시했죠. 부시가 대통령이 된 뒤 그를 몇 번 만난 적이 있어요. 교육정책과 관련해 나(당시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다른 주지사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고 우리는 2박 3일 동안 버지니아대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던 기억이 납니다.”

―대선 때 네거티브 공세를 퍼붓던 정적을 돕고 싶은 마음이 나던가요?

“당시 부시 측의 네거티브 공세는 즉각 대응하고 쉽게 제압할 수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무대응’을 택했죠. 전적으로 제 오판이었습니다. 결국 대선서 패한 뒤 주지사 임기를 채우기 위해 매사추세츠로 돌아왔고. (부시 전 대통령의) 교육정책은 우리 주에도 좋은 아이디어였기에 함께한 겁니다.”

그러나 듀카키스 교수는 “선거에서 네거티브가 시작되면 즉각 팩트(사실)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정당한 반박은 흙탕물 싸움과 다르다”고 힘주어 말했다.

듀카키스 교수는 주지사 시절 5차례의 감세를 실행하며 경제 부흥을 이뤄 ‘매사추세츠 기적의 주인공’으로 각광받았다. 그 여세를 몰아 1988년 대선에 나섰지만 ‘부인이 성조기를 불태웠다’ ‘그의 죄수 일시 출소제도(furlough program)로 풀려난 매사추세츠의 한 살인자가 또 살인을 저질렀다’는 식의 부시 캠프 측 공세로 큰 타격을 입었다. 뉴욕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가 “당혹스러울 만큼 야비한 네거티브였다”고 표현했을 정도.

―미국에선 정권 교체 후에도 반대파에 대한 정치적 보복 없이 국정이 순항합니다. 그 비결이 뭡니까?

“선거 때부터 이미 극단(extreme)을 경계하고 공통분모를 찾으려는 데 중점을 두는 실용적 전통 때문입니다. 일종의 자정(自淨) 능력이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해 요즘 보수진영은 자신들의 성향에 맞는 (보수적) 판사들을 속속 임명해 사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지만 그렇게 임명된 판사들도 헌법과 판례에 근거해 소신대로 판결하고 있다는 점도 그 (자정 능력의) 방증입니다.”

인터뷰 내내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또 다른 냉전을 몰고 오고 있다면서 “트럼프가 ‘미국 대 중국 러시아’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은 1930년대 (평균 50%에 가까운) 고율 관세 부과(스무트-홀리법)로 대공황 탈출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유럽의 보복 관세로 미국 경제가 거의 초토화된 적이 있습니다. 그리스 격언에 ‘파티마 마티마(pathima mathima)’란 말이 있어요. ‘예상치 않은 일은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로부터 배움을 얻으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왜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는 겁니까? 매사추세츠주의 효자 수출상품은 크랜베리인데 중국의 보복관세로 이미 큰 타격을 받고 있어요. 무역전쟁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옵니다. 군비 증강도 마찬가지예요. 냉전시대 소련과의 군비 경쟁에 마침표를 찍는 의미로 체결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도 트럼프는 탈퇴한다고 했습니다. 러시아가 먼저 조약을 위반했다며 군비 증강 중인 중국까지 싸잡아 비난을 했죠. 미국에 대항해 중국과 러시아가 가까워지게 만드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중간선거로 하원을 장악하게 된 민주당이 내년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거센 제동을 걸 것이란 예상이 우세합니다. 대북 정책도 그렇습니까?

“민주당은 국제사회와의 갈등이 아니라 협력을 지향하는 쪽으로 움직일 겁니다. 북한과의 대화는 지지합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정책엔 구체적인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죠. 북한 문제에 있어선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참여를 좀 더 이끌어 내야 합니다. 베트남, 쿠바 등 미국 북한 양국과 모두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선에 도전한 정치인이었고 지금은 정치학 교수입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무엇인가요?

“저는 평생 민주당원이지만 단 한 번도 당의 이익을 국익 앞에 놓은 적이 없습니다. 정치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정치는 특권이 아닌 서비스입니다.”

그는 한국과의 오랜 인연도 소개했다.

“1955년부터 16개월간 문산에서 군사정전위원회 유엔대표단의 지원 업무를 담당했죠. 당시 그곳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폐허였는데 7년 전 하버드대 연례 아시아회의 참석차 (방한해) 다시 찾았을 때는 정말 압도적으로 변화된 모습이었습니다. 흙먼지를 날리며 야구를 했던 임시 야구장 터가 남아 있어 잠시나마 추억에 잠길 수 있었죠.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인들은 늘 열정적이고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한 민족이라는 게 인상적입니다.”

인터뷰가 예상보다 길어지자 부인 키티 여사가 응접실로 들어와 “다음 일정을 위해 곧 일어나야 할 것 같다”며 양해를 구했다.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 후 전도유망한 예비 정치인이던 그가 아들 하나를 둔 워킹 싱글맘 키티 여사와 열정적 연애 끝에 결혼한 러브 스토리는 유명하다. 동료 정치인들의 성(性)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퇴근 후 아내 곁으로 돌아가기도 바쁜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결혼 55주년을 맞았다는 그에게 해로(偕老) 비결을 묻자 “함께 즐겁게 지내는 것(having fun together), 그리고 존중(respect)이다”라는 간결한 답이 돌아왔다.

브루클라인=김정안 특파원 jkim@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