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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정치적 목적으로 웜비어 고문-살해” 인권유린 단죄 경고장

입력 | 2018-12-26 03:00:00

[美법원 “北, 웜비어 가족에 배상”판결]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망과 관련해 5억 달러가 넘는 북한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24일(현지 시간) 미 연방법원의 1심 판결은 논란이 돼 온 북한의 고문 등 불법 가혹행위가 실제 있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북한을 상대로 힘겨운 법정싸움을 벌여온 웜비어 가족의 손을 들어준 차원을 넘어 인권 문제를 외면해온 북한을 향한 미 사법부의 강한 경고라는 해석도 나온다.

○ “北의 고문 등 가혹행위로 사망”

지난해 6월 뇌사 상태로 미국으로 돌아온 뒤 숨진 오토 웜비어의 2016년 3월 북한 억류 당시 모습. 평양=AP 뉴시스

이번 판결은 19일 법정에서 웜비어의 부모와 북한 전문가들의 증언이 이뤄진 뒤 닷새 만에 나왔다. 사건을 맡은 베릴 하월 판사는 배상금액 등 주문을 담은 2장짜리 판결문 외에 46쪽에 달하는 장문의 의견서(memorandum opinion)를 따로 첨부했다. 그만큼 이 사건에 대한 법원의 관심이 크고 신속한 처리 의사도 강했다는 의미다.

하월 판사는 북한에 억류됐던 웜비어가 뇌사 상태에 이르게 된 원인과 관련해 주치의였던 대니얼 캔터 박사의 분석 내용에 주목했다. 캔터 박사는 ‘뇌의 혈액 공급이 5∼20분간 중단되거나 크게 줄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북한의 고문 방식으로 알려진 물고문과 치아 뽑기, 전기고문 등이 호흡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증언한 로버트 콜린스 북한인권위원회(HRNK) 선임고문의 증언도 근거로 들었다.

북한이 웜비어로부터 허위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이런 고문을 자행했으며 자백을 받아낸 이후에도 정보를 캐내기 위해 고문을 지속했다는 것이 하월 판사의 판단이다. 그는 “북한은 핵과 재래식 무기의 도발을 이어가면서 이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대응이나 대북제재를 막기 위한 정치적, 외교적 목적으로 웜비어를 억류해 고문했다”고 지적했다.

하월 판사는 이번 사건이 주권국가를 다른 나라의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주권면제’ 원칙에 예외를 인정받는 근거에 대해서도 의견서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미국인을 상대로 불법 가혹행위를 하는 테러지원국의 경우 외국주권면제법(FSIA)에 따라 미 법정에서 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6년 1월 북한에 억류됐던 웜비어는 지난해 6월 의식불명 상태로 돌아와 숨졌고, 미국은 웜비어 사망 이후인 지난해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즉, 북한이 테러지원국이 아닌 시기에 웜비어가 숨졌지만 ‘특정사건이 테러지원국 (재)지정에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경우’ 소송이 가능하다는 조항에 따라 웜비어 가족의 소송이 이뤄졌다.

○ “북한 인권 개선의 계기 삼아야”

배상 판결에도 불구하고 웜비어 가족이 북한으로부터 배상금을 받아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 내에 강제 집행할 북한의 상업 자산도 거의 없는 상태다. 북한은 북한에 납치돼 사망한 김동식 목사의 유족들이 미 법원에 낸 소송에서 3억 달러의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내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집행하지 않고 있다.

다만 워싱턴 변호사협회 소속의 안찬모 변호사는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원고 측이 미 행정부에 북한의 해외자산 동결 등 다양한 금융제재를 통해 배상금 지불에 나서 달라고 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웜비어 측 변호인단은 일단 ‘미 테러지원국 피해기금(USVSST Fund)’을 통해 배상받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대이란 제재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이에 연루됐던 글로벌 은행들이 낸 거액의 벌금을 기금에 쌓아 놓고 있는 만큼 집행에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대북 인권 개선 압박도 다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로버트 포트먼 공화당 상원의원은 트위터에 “웜비어가 살아 돌아올 수는 없지만 북한에 정당한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적었다.

웜비어의 부모는 재판 후 성명을 내고 “김(정은) 정권이 아들의 죽음에 합법적이고 도덕적인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전 세계가 알 수 있도록 판결이 내려진 것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워싱턴=이정은 lightee@donga.com·김정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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