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맨 뒷자리에 4세 원아가 잠들어 있었다. 버스 운전사도 그냥 시동을 끄고 문을 잠갔다. 담임교사는 아이가 안 온 것을 알았지만 ‘부모가 데려다주나 보다’ 하고 넘겼다. 7시간 뒤 아이는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전까진 평범한 어린이집 교사였던 A 씨는 지난달 1심에서 금고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다. 올해 대형 안전사고의 책임자로 지적된 사람들 대부분이 A 씨처럼 졸지에 운명이 바뀌었다.
공사장에서 일하다 호기심에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인 역시 중실화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신세다. 동료들의 신망이 높았던 이 합법체류 노동자는 풍등이 저유소로 날아가 화재의 불씨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일용직 등 7명이 숨진 서울 종로고시원 화재는 또 어떤가. 이 고시원은 3년 전 서울시의 간이 스프링클러 무료 설치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건물주의 반대로 무산됐다. 스프링클러 물방울이 언젠가 생명수가 될 것이라고 실감했다면 건물주는 그런 결정을 했을까.
사회가 복잡해지면 각자가 분업 관계로 얽혀 자신의 생명을 타인의 관리에 맡긴 채 살아가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나의 작은 부주의가 언제든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안전사고에 관한 한 우리 누구든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위험 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제도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금처럼 평소엔 위험을 과소평가하다 사고 후에 책임자 색출에만 급급한다면 아무리 많은 참사를 겪어도 나아질 수 없다.
“아직 거기서 죽은 사람 없잖아요.”
위험이 현실화되지 않았는데 점검 대상에 넣었다가는 업계의 불만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푸념도 한다. 그렇게 우리의 안전 정책은 수많은 인명을 잃은 뒤에야 더디게 나아갔다. 참담한 희생을 딛고 만든 정책마저 ‘행정 편의’ 규정들로 누더기가 된다. ‘면적 몇 ㎡ 이상’, ‘층수 몇 층 이상’, ‘건립연도 몇 년 이후’ 등 온갖 제한을 걸어 단속 대상을 좁힌다. 자연히 공무원들이 책임질 범위는 줄어든다. 그 결과 사각지대가 생기고 사고는 거기서 또 터진다.
안전에 대한 정부의 책임 회피식 태도는 공기업과 민간에 전염된다. 위험을 ‘외주화’한다. 위험한 일은 하청업체에 맡겨 비용을 줄이고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까지 떠넘긴다.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숨진 김용균 씨(24)처럼 먹이사슬 맨 아래에 있는 하청 근로자들이 위험을 떠안는다.
강릉 펜션 사고 희생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확인한 뒤 이런 말을 했다.
위험에 둔감하고 책임 회피에 민첩한 사회에서는 ‘잘못 없는 사람이 잘못되는’ 비극을 멈추기 어렵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