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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정글 KBL, 눈에 띄는 ‘홍이점’

입력 | 2018-12-26 03:00:00

4년차 홍선희-신임 이지연 심판
“여자라고 얕봐서 항의 더 하나? 처음엔 고민 많았지만 결국 편견
움츠리지 않고 새로운 길 열 것”




이지연 한국농구연맹 신임 심판(왼쪽)에게 홍선희 심판의 존재는 큰 힘이 됐다. 이 심판은 “KBL에 여자 심판이 없다면 더 고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가능성은 있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올 시즌 미국프로농구(NBA)에는 ‘여풍’이 거세다. 역대 4번째 여성 코치(크리스티 톨리버·워싱턴), 2명의 여성 심판(역대 4, 5번째)에 이어 여성 최초 부단장(켈리 크라우스코프·인디애나)까지 탄생했다.

물론 NBA에 견주자면 국내 프로농구(KBL)에서 여성의 비중은 미미하지만 밀리지 않는 게 있다면 여성 심판의 존재다. 현재 리그 심판 19명 중 두 명의 여성이 코트를 누비고 있다. 홍선희(41), 이지연 심판(36)이다.

역대 4호 여성 심판이 된 이지연 심판은 대한농구협회 상임심판으로 4년간 활동하다 올해 KBL 심판에 지원하기 위해 사표를 냈다. 격려도 받았지만 대부분은 무모하다는 반응이었다. 이 심판은 “최고 무대에 도전하는 만큼 후회는 없었다. 부모님이 고깃집을 하시는데 제가 (KBL에) 지원했을 때 고깃집 매니저님이 공교롭게 그만두셨다. 혹시 떨어지면 잠깐이라도 일을 도우려고 했다(웃음)”며 “상임심판도 자부심이 있었지만 점점 나이도 들어가고 기회가 있을 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물론 설렘 속 치른 데뷔전이 오래 지나지 않아 시련도 찾아왔다. 선수나 감독들의 지나친 항의를 마주할 때면 ‘신인 심판에 또 여자이기도 하니까 반응이 더 심한 건 아닌가, 내가 부는 것마다 잘못됐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신감도 잃었다.

7시즌 동안 여자프로농구(WKBL) 심판으로 뛰다 프로농구에서 4시즌째(116경기)를 보내고 있는 홍선희 심판은 “처음에는 그런 것 때문에 많이 힘들어한다. 콜을 하자마자 과한 반응이 생기면 아무리 맞는 콜을 해도 스스로 의심을 하게 된다. 최대한 빨리 잊고 집중해야 한다. 그게 심판의 일이고 순간순간 판단하고 책임지는 게 또 매력인 일”이라고 말한다.

물론 홍 심판도 “처음에는 ‘왜 나한테만 이럴까, 키도 작고 신입이라고 무시하나’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지나 보니 내 편견이더라. 감독, 선수는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 내가 여자라서 더 어필하고 항의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 스스로가 ‘여자라서 그래’라는 생각으로 움츠러든 것 같다. 각자의 일에 충실하면 된다. 감독, 선수는 당연히 항의할 수 있고, 오심을 줄이고 경기를 잘 운영하는 게 심판들의 역할이다.”

이런 고민은 성별을 떠나 신입 심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성장통이다. 경기 내내 팬, 선수, 감독들의 격한 항의를 받으며 휘슬을 부는 게 심판의 숙명.

심판은 경기가 없을 때도 바쁘다. 경기 리뷰와 교육 등으로 꽉 차 있다. 경력이 쌓여도 오심 방지를 위한 노력은 늘 힘들다. 이 심판은 “KBL에 오면서 새삼 심판은 외로운 직업이라는 걸 또 한번 느꼈다. 그래서 동료애가 남다르다. 일단 3심이 운영하기 때문에 동료로서 뭉쳐야 코트에서도 호흡이 나온다”고 했다.

쉽지 않은 길이고 아직은 남자 심판이 대다수이지만 ‘홍일점’ 같은 두 심판은 오늘도 힘차게 코트에 나선다. 홍 심판은 “성별을 불문하고 요즘 심판 지원자가 많이 줄었다. 우리가 더 잘해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후배들에게도 길이 열릴 것 같다”고 말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