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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식의 스포츠&]학교 체육관은 누구 것일까?

입력 | 2018-12-27 03:00:00


특정 동호회의 학교체육시설 과점(寡占)으로 통계상 개방률에 비해 일반 지역주민들의 ‘개방 체감도’는 낮다.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집 주변의 가장 가까운 스포츠시설은 무엇일까. 각종 설문조사에서 항상 1위로 꼽히는 것은 학교체육시설이다. 전국 초중고교(1만1591개교)의 운동장 개방률은 91.1%, 체육관(강당 포함) 개방률은 61.6%(2018년 12월 현재)다. 높은 수치다. 그런데 지역주민들이 학교체육시설 개방 현황에 대해 느끼는 실제 체감도는 왜 낮을까.

통계 수치에는 드러나지 않는 개방의 질(質)과 단골 이용자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운동장 개방은 평일엔 등교시간 직전과 하교시간 직후 1∼2시간 남짓이 대부분이다. 그 시간대에는 지역주민들도 바쁘다. 실내 체육관(또는 강당) 대부분은 임차료를 내는 배드민턴 등 특정 동호회가 ‘점령’하고 있다. 일반 지역주민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초중등교육법 제11조(학교시설 등의 이용)에는 ‘모든 국민은 학교교육에 지장을 주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그 학교의 장의 결정에 따라 국립학교의 시설 등을 이용할 수 있고, 공립·사립학교의 시설 등은 시도의 교육규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개방할 수 있다’와 ‘개방해야 한다’는 큰 차이다. 게다가 학업에 지장을 주느냐 여부의 판단은 전적으로 학교장에게 달렸다.

그런데 학교장은 정부의 학교체육시설 개방 권장 지침을 외면할 수 없는 입장이다. 그래서 학교시설 훼손과 안전사고, 쓰레기 발생 등 골칫거리를 최소화하기 위해 손쉬운 개방 방법인 동호회 대관(貸館)을 주로 택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생활체육 인프라는 선진국에 비해 절대량이 부족하다. 공공 체육관 1곳당 인구는 한국이 5만7000명인데 일본은 1만5000명, 노르웨이는 1만7000명이다. 수영장 1곳당 인구는 한국이 14만 명, 일본은 2만9000명, 노르웨이는 5000명이다.

이처럼 열악한 스포츠 인프라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5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는 ‘학교체육시설 개방 지원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전용 체육관 및 강당을 보유하고 있는 학교가 대상이다.

대한체육회가 주관하고 있는 이 사업은 학교체육시설의 유휴시간대(방과 후, 휴일 등) 개방을 통해 지역주민의 생활체육 참여율을 높인다는 게 그 취지다. 전담 관리매니저 인건비와 배상보험 등 기본 예산이 지원되고 유익한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활성화되면 공유경제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호응은 별로 없다. 첫해인 2015년 164개교가 참여했고 2016년 210개교까지 늘었지만 이후 계속 줄고 있다. 2017년 172개교에서 올해는 155개교(초 89, 중 40, 고 26)에 불과하다. 전국에서 학교가 가장 많은 서울(1352개교)은 올해 한 곳도 없다.

학교장들이 이 사업 참여에 소극적인 이유는 명확하다. 인센티브는 없는데 선정 절차가 번거롭고 최종 관리 책임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호회에 임대해 주는 것으로도 당당히 ‘개방 학교’ 명단에 오를 수 있기에 굳이 이 사업에 참여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일본은 1976년 학교체육시설 개방을 시작해 완전히 정착시켰다. 우리나라와 달리 개방의 주체 및 책임자는 지역 교육청 교육위원회다. 일본의 학교장은 학교체육시설 개방 관련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일본의 종합형 스포츠클럽은 학교체육시설 우선 위탁 운영권을 갖는데, 3600개에 이르는 스포츠클럽 중 70%가 학교체육시설을 거점으로 학생과 지역주민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40년 넘게 지속적으로 학교체육시설 개방을 추진해온 일본과 시행 4년 차의 과도기라고는 하지만 그 전망이 밝지 못한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학교의 역할’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학교는 학생은 물론이고 지역주민의 교육도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의 학교관(觀)이다. 반면 ‘학교의 임무는 학생의 교육이고 그 시설은 학생을 위한 것’이라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

국가 정책사업이 성과를 내려면 관련 부처 간 협력이 중요하다. 그 취지가 훌륭하고 당위성이 충분한 정책이라도 관련 부처가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급급해서는 제대로 추진될 리 없다. 혹자는 “일본은 스포츠청이 문부과학성 산하 기관이기에 학교체육시설 개방 업무 협조가 원활하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변명은 너무 구차하지 않을까.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