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선 한국방송인회장
필자는 조용필과 잠깐 인연이 있다. 1975년 가을 대학가에서 듣지 못했던 트로트 가요가 유행하고 있었다. 동아방송(DBS)에서 가요 프로그램을 연출하고 있을 때였다. 대학가에 있는 한 카페에 가서 신청곡으로 들어봤다. 리듬이 뽕짝 분위기와 다르고 가창도 흔히 들어온 직업적인 음색이 아니어서 부담 없는 친근감을 줬다. 그해 마지막 날 12월 31일 ‘저녁의 희망가요’에 초대가수로 출연했다. 그리고 몇 해 지나서 1979년 동아방송 연속극 모집에 배명숙 씨의 ‘창밖의 여자’가 당선작으로 뽑히고 주제가 가사를 받았다. 가사가 한편의 시(詩)였다. 작곡과 가수를 검토하는 중 마침 조용필이 방송활동금지에서 풀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조용필과 전화 통화로 작곡을 누구로 할까 하니까 본인이 직접 하면 어떻겠느냐는 것. 아직 그의 작곡을 들어본 일이 없지만 쉽게 결정하고, 가사를 불러줬다.
1979년 12월 벽제에 있는 지구레코드 스튜디오에서 녹음했다. 가수가 간단히 목을 풀고 연습으로 1절을 녹음하고 본녹음으로 들어가려는데 기계가 고장이 났다. 끝내 고치지 못해서 조용필 팀은 다른 일을 하러 갔다. 1980년 1월 2일부터 30회 방송되는데 연습용 녹음을 그대로 방송했다. 주제가 ‘창밖의 여자’의 작곡과 가창은 놀라웠다.
1980년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는 각 방송의 가요상을 휩쓸었다. 라디오 연속극 주제가 ‘창밖의 여자’는 조용필의 새 출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우리 가요를 새로운 패턴으로 이끄는 계기를 제시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동아방송은 언론통폐합으로 그해 11월 30일 문을 닫고, ‘창밖의 여자’는 조용필과 함께 명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조용필의 음악 50주년을 축하하고, 그의 건강과 함께 60주년을 기대하며 박수를 보낸다.
안평선 한국방송인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