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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폴폴… 간호사-운전사 이야기가 뜬다

입력 | 2018-12-27 03:00:00

‘직업 에세이’ 도서 잔잔한 새바람
‘나는 간호사…’ 28쇄 찍는 등 인기




“저희들도 사람입니다. … 병이 무섭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환자들이 있기에 병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 차가운 시선과 꺼리는 몸짓 대신 힘주고 서 있는 두 발이 두려움에 뒷걸음치는 일이 없도록 용기를 불어넣어 주세요.”

에세이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김현아 지음·쌤앤파커스)에 나오는 구절로 메르스 사태 당시 환자를 간호하며 쓴 편지의 일부다. 저자는 메르스에 의한 첫 사망자가 나온 한림대 동탄성심병원의 외과중환자실 책임간호사로 일했다.

법관이나 의사 등 엘리트 직업 위주로 출간돼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던 직업 에세이 도서 시장에 잔잔한 새바람이 불고 있다. 간호사를 비롯해 아파트 관리소장이나 버스 운전사, 편의점 주인처럼 상대적으로 평범한 직업을 가진 이들이 쓴 책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

쌤앤파커스에 따르면 올해 4월 발간된 ‘나는 간호사…’는 최근 28쇄를 찍었다. 외과중환자실 간호사로 21년간 환자를 돌본 간호사가 열악한 처우와 환경 속에서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가 핍진하게 묘사돼 독자의 공감을 샀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5월 출간된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허혁 지음·수오서재)는 1만 권이 팔렸고 아파트 관리소장이 쓴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김미중 지음·메디치미디어), 6년 차 편의점 점주의 ‘매일 갑니다, 편의점’(봉달호 지음·시공사)도 올 9월 발간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정상태 쌤앤파커스 편집자는 “과거에는 특정 직업을 갖기 위해 갖춰야 할 소양 등 취업이나 자기계발 측면에서 쓴 책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직업 현장의 애로와 기쁨 등 살아 있는 이야기를 다루면서 직업적 사명감과 보람을 잘 버무린 에세이에 독자들이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업 에세이가 특정 직업에 대한 오해를 줄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은희 수오서재 편집장은 “직업이 달라도 삶의 애환과 성찰은 모두 맞닿아 있다”며 “평범한 이들의 직업 에세이가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책을 내본 적이 없는 사람도 쉽게 독자와 만날 수 있는 ‘브런치’ 같은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도 이런 현상을 가속화했다. 화재 진압 현장의 치열함과 소방관 처우 문제 등을 다룬 ‘어느 소방관의 기도’(오영환 지음·쌤앤파커스) 역시 ‘브런치북 프로젝트’ 수상작으로 2015년 12월 출간돼 지금까지 11쇄를 찍었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앞으로도 잘나가는 특정 직업군의 글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살리면서 자신만의 오솔길이나 샛길을 성실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더욱 유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