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등처럼 길게 뻗었는가 하면 새끼줄처럼 꼬인 로프 모양이 많다. 편평한 암반이 넓게 펼쳐지기도 했고 뾰족한 가시가 무수히 박혀있는 듯하기도 하다. 제주의 해안 지질인 ‘여’는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여는 ‘물속에 잠겨 있는 바위’라는 사전적 뜻을 갖고 있는데, 제주에서는 조간대(밀물 때 잠겼다가 썰물에 나타나는 연안) 의미까지 담고 있을 만큼 광범위하게 쓰인다.
제주 해안 지질형태를 크게 ‘파호이호이 용암’과 ‘아아 용암’으로 구분한다. 하와이 원주민 말에서 유래했다. 파호이호이 용암은 우유가 바닥에 쏟아져 순식간에 퍼지듯 점성이 낮기 때문에 넓고 편평한 형태를 한다. 제주에서는 ‘빌레’ 용암이라고 한다. 부풀어 오른 빵처럼 생긴 ‘투물러스’는 파호이호이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진다. 점성이 높은 아아 용암은 찐득찐득한 꿀이 겹쳐지면서 주름이 생긴 형태이고 제주시 용두암처럼 바위 끝이 날카롭다. 화산폭발의 결과물인 여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투명한 바다와 어울린 진기한 경관이다.
여는 바다 생물의 주요 서식처다. 해녀들이 물질을 하려면 주로 여를 통해서 오간다. 해안 조간대의 여는 물론이고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여는 해녀들의 보물창고다. 미역, 모자반, 전복, 소라, 성게 등이 바글바글하다. 해녀들의 직접적인 소득과 연결됐기 때문에 여의 소유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