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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의 나’를 소중히 여기는 똑똑한 여성들을 응원합니다

입력 | 2018-12-28 03:00:00

천연화장품 브랜드 아이소이 대표 이진민




“초등학교 1학년 때 반장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았는데 선생님이 ‘부반장’ 배지를 주시는 거예요. 반장은 남자아이 몫이라고요. 저는 이해할 수 없어 항의했지만 묵살됐죠.”

천연화장품 브랜드 아이소이로 알려진 (주)자연인 이진민 대표(55)는 “아들딸 차별 없는 집에서 자라다 처음으로 경험한 성차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린 나이지만 그 때부터 ‘여성에게 관심을 갖고, 여성을 위해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싹튼 것 같다”며 웃었다.

이 대표의 이력은 독특하다. 그의 첫 직업은 카피라이터. 이화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대기업 계열 광고회사인 금강기획, 제일기획에서 14년간 일했다. ‘한국 지형에 강하다, 애니콜’ ‘나는 나, 톰보이’ ‘눈길을 움켜쥐듯 달린다, 한국타이어’ 등 히트작들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광고계를 떠났다. 1999년 여성포털 마이클럽 창립에 합류한 것이다.


여성을 위해 의미 있는 일 하고 싶어

“당시 인터넷 기반 회사들에게 러브콜을 받았지만, 여성 포털 마이클럽을 선택했어요. 여성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거든요. 당시 사회생활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적잖았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죠.”

그는 실제 여성에게 도움이 되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보겠다는 포부로 마이클럽에 합류했다. 당시 그가 기획한 ‘선영아 사랑해’라는 플래카드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회원 수는 7백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던 중 투자자였던 홍콩 본사의 일방적인 통보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어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 인생 철학을 담아 일했고, 하나부터 열까지 내손으로 키운 회사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이 대표는 여성을 위한 사업을 하겠다는 소신 만큼은 포기하지 않았고 이를 계기로 ‘여성의 피부에 좋은’ 화장품 사업에 눈을 돌리게 됐다.

“그 때 힘들어하던 저를 위로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여자 선배들이 있었어요. 따뜻하고 지혜로운 그 언니들로부터 용기를 얻었죠. ‘언니’의 힘이 얼마나 큰지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고맙습니다. 마이클럽이란 포털 비즈니스와 화장품 사업은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제게는 ‘여성’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됩니다.”


유럽 각지를 돌며 천연 화장품 연구 10년

“대학시절 여드름이 많이 나 치료 받았는데, 스테로이드 약 부작용으로 오랫동안 고생했어요. 각질이 일어나 물 세수만 해도 따가울 정도였는데, 계절이 바뀔 때 더 심했죠. 우연히 독일 천연 화장품을 알게 돼 사용하면서 상태가 좋아졌고, 화장품에 관심을 갖게 됐죠.”

그는 화장품의 성분을 꼼꼼히 살펴보았고, 마이클럽 회원들과 솔직한 화장품 사용 후기를 나누는 온라인 코너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제 모습을 보면 소비자 운동이나 여성 운동을 해야 할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화장품 회사 CEO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죠(웃음).”

퇴직 후 천연 화장품을 만들어보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국내에는 관련 정보도 거의 없고 생산 설비 확보도 어려웠다.

“무엇보다 원료가 중요하지만 좋은 천연 원료만 섞는다고 해서 곧 화장품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여러 성분을 섞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반응도 고려해야 하고, 소비자들이 원하는 화장품 기능도 충족시켜야 해요. 때문에 천연 화장품은 고도의 기술력과 노하우를 필요로 하죠.”

우선 그는 독일의 천연 화장품 브랜드 로고나를 직수입, 국내에 천연 화장품을 소개했다. 틈날 때마다 로고나의 본사가 있는 독일은 물론 유럽 각지에서 천연 화장품의 원료를 찾아다니며 공부했다. 10년 후인 2009년, 이 대표는 마침내 천연 화장품 브랜드 아이소이를 내놓았다.

“아이소이(isoi)는 나는 매우 똑똑하다(I’m so Intelligent), 나는 매우 소중하다(I’m so Important)의 약자입니다. 성분을 따져보고 피부에 좋은 화장품을 고르는 똑똑한 여성,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몸에 좋은 것을 고르는 여성이 주 고객이자 우리가 추구하는 여성상이죠.”

화장품 사업은 흔히 ‘꿈을 담는 비즈니스’ ‘마케팅의 꽃’이라 불린다. 톱스타를 내세운 광고와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제품 포장은 화장품 업체들이 내세우는 주요 마케팅 전략이다.

“화장품을 팔면서 줄곧 성분 얘기만 하는 제가 바보같이 보일 수 있어요(웃음). 하지만 전 우리 여성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해요. 겉이 아닌 속(성분)을 보고 자신의 피부에 좋은 화장품을 선택하리라 믿습니다. 아이소이는 이런 믿음에서 출발했어요.”


최고 원료 고집하며 유해 의심 화학 성분 무첨가

아이소이는 유해 의심 성분들을 과감히 뺐다. 이 대표는 “유해 논란 화학 성분을 아이소이 화장품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유해의심 화학 성분 무첨가 No마크’를 전제품에 부착하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밝힌다. 아이소이의 제품 개발에는 ‘착한 성분’에 대한 이 대표의 고집이 자리하고 있다.

유해 의심 성분이 들어가지 않은 화장품은 사업으로는 위험 부담이 크다. 원가가 비싸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연 화장품인 것처럼 떠들지만 실제 천연 추출물이 극소량인 경우도 많다. 화학 성분 무첨가 제품이라 홍보하지만 유해 의심 화학방부제가 첨가된 경우도 있다. 천연화장품이라 내세우는 제품도 전체 성분을 체크해야 하는 이유다.

아이소이 제품의 핵심 원료인 불가리안 로즈 오일의 경우 장미 수천 송이를 끓이고 식히는 작업을 반복해야 소량의 원액을 얻을 수 있다. 피부 미백과 재생에 탁월한 원료로 알려졌지만 과거엔 너무 비싸 약용으로만 쓰일 정도였다고. 이 대표는 “오일 등급을 2, 3등급으로 낮추면 단가가 훨씬 낮아지지만, 유효성분이 높은 1차 추출 오일만을 고집한다”고 밝혔다.

“원료는 타협할 수 없어요. 화학 성분 때문에 제 피부가 그렇게 아팠잖아요. 대신 광고나 포장 용기의 거품을 빼고, 온라인 쇼핑몰 중심으로 가격을 책정합니다.”

이 대표의 이러한 신념은 아이소이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미국 비영리 환경운동그룹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에서 국내 최초로 EWG 베리파이드(VerifiedTM) 인증 마크를 받는 결과로 나타났다. 또한 미국의 대표적인 유기농 마켓인 홀푸드 마켓에 아시아 천연 화장품으로 유일하게 입점하고 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천연 화장품 시장을 더욱 넓히고 ‘천연 화장품은 아이소이’라는 공식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킬 수 있도록 제품 원칙을 철저히 고수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 ‘단순한 화장품이 아닌 의미 있는 천연 화장품 사업으로 이끌고 싶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돈은 제대로 벌어 아름답게 써야

이 대표의 ‘여성을 위하는’ 기업 정신은 마케팅 현장에서도 다양하게 반영된다. 2016년 아이소이에서 진행한 ‘선영아 사랑해’ 캠페인은 평범한 여성들의 삶에 응원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 올해 ‘아이러브아이 캠페인’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 여성들을 응원하면서 ‘잡티세럼’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저소득층 여성 지원 사업에 기부했다. 사회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직원들이 빈곤 어린이 돕기에 나서도록 회사가 지원하며, 사내 ‘해외 봉사단’을 구성해 베트남, 러시아 등에서 교육지원 봉사도 한다.

“사업 초기, 자금이 떨어진 적이 있어요. 직장생활하며 모은 돈을 창업 4개월 만에 다 써버린 거예요. 그 때 ‘돈은 내 것이 아니구나, 돈만을 위해 일한다면 얼마나 슬플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 한 학교에서 특강을 하고 강의료 50만원을 받았다. 그 돈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질 수 없었다. 그 중 10분의 1을 교회에 기부하면서 큰 행복감을 느꼈다. 그 때부터 그는 “돈에 대한 가치가 달라져 제대로 벌어서 더 아름답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이 대표는 후배나 직원들에게 “손해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처음엔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 이익인 경우가 많아요. 좋은 제품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간 알아줍니다. 끝까지 그 의미와 가치를 잃지 않는다면 말이죠.”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는 시장에 간다. 카피라이터 시절부터의 습관이다. 치열한 삶의 현장인 시장을 돌아다니며 사람도 구경하고, 물건도 사고, 맛있는 음식도 사먹으면 에너지가 다시 솟는다고 한다.

2019년인 내년은 아이소이 창립 10주년이다. 창립 때 함께 한 직원 대부분이 아직도 함께 일하고 있다.

“근속 10년 선물로 한 달씩 안식월 휴가를 주려고 해요. 그간 수고 많았으니 재충전하라는 의미죠. 저도 내년에 한 달 휴가를 갑니다. 아이소이의 2020년 목표는 ‘아시아 넘버 원 천연 화장품’이에요. 충분히 쉬고 재충전해야 목표를 향해 달려갈 에너지가 생기겠죠?(웃음)”


글/김경화(커리어 칼럼니스트, 비즈니스·라이프 코치)
사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동아일보 골든걸 goldengir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