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차 중견배우 신영숙이 ‘역주행’을 하면서 2018년을 최고의 한 해로 보냈다. 올해 출연한 4편의 작품 모두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고, 흥행에 성공했다. 사진은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주인공 엘리자벳 황후를 연기하고 있는 신영숙.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 뮤지컬 엘리자벳 신영숙
데뷔 20주년, 거꾸로 내려간 배역 연령대
올해 출연한 대극장 작품 4편 모두 흥행
“엘리자벳, 음악적으로 너무 완벽한 작품”
음원차트에나 존재하는 줄 알았던 ‘역주행’이 뮤지컬에도 있었다. 그런데 작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배우 신영숙.
그런데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데뷔 때부터 ‘여사’로 출발해 20∼30대 시절 ‘부인 전문배우’로까지 불리던 신영숙이 40대에 들어서면서 ‘역주행’을 하고 있다.
우선 ‘양’이다. ‘레베카’로 출발해 ‘더 라스트 키스’, ‘웃는 남자’를 거쳐 ‘엘리자벳’까지. 올 한 해에만 4편의 대극장 뮤지컬에 출연했다. 과연 ‘체력의 신영숙’다운 스케줄이다.
‘질’도 역주행이다. 레베카의 댄버스부인, 더 라스트키스의 라리쉬 백작부인, 웃는남자의 조시아나 공작부인은 모두 ‘부인’이지만 같은 역으로 캐스팅된 배우들이 옥주현, 정선아, 리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부인’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조시아나 공작부인의 경우 대본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한다’라는 지문이 따로 적혀 있을 정도다.
신영숙의 ‘역주행’은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정점을 찍은 느낌이다. ‘죽음마저 사랑에 빠지게 한 아름다운 황후’ 엘리자벳 역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황후였던 엘리자벳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 신영숙은 ‘씨씨’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맞이하는 50대까지 황후의 전 인생을 보여준다. 그가 연기하는 씨씨의 나이는 16세. 아마도 데뷔 이래 신영숙이 맡은 최연소 캐릭터일 것이다.
배우 신영숙.
● 김준수와의 첫공에 만족, “삶의 주인공이 되세요”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 스테이지B에서 만난 신영숙은 이전에 보았을 때보다 ‘노골적으로’ 아름다워져 있었다. 그는 “극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 가꿔야겠다는 생각에 (힘들게) 다시 어려지고 있다”며 웃었다.
배역의 연령대가 거꾸로 낮아지면서 신영숙은 올해 각별히 관리를 해야 했다. 한편으로는 생각이 많았단다.
“자칫 다이어트를 했다가 노래에 힘이 없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기우였어요. 그동안 전 제가 밥심으로 노래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웃음)”
성악을 전공한 신영숙에게 실베스터 르베이의 클래시컬한 ‘엘리자벳’ 음악은 고향에 온듯 편하다. “음악적으로 너무나 완벽한 작품”이라고 했다.
“대본만 봤을 때는 너무 답답했어요. 하루는 혼자 연습실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쫙 불러봤는데 답답했던 게 다 해소되어 버리는 거예요. 저는 막 울고 있고.”
‘엘리자벳’은 최근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김준수의 첫 복귀작으로도 큰 관심을 받았다. 김준수는 2012년 초연 때부터 ‘죽음(토드)’ 역을 맡았는데, 당시 옥주현과 보여준 케미는 그야말로 ‘죽음’이었다.
신영숙은 뮤지컬 ‘모차르트’에서 이른바 ‘황금별 여사’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모차르트는 김준수의 뮤지컬 데뷔작이기도 하다.
“(김)준수가 죽음 역할을 정말 사랑해요. 팬들도 죽음을 할 때 더욱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준수는 뒤늦게 연습에 합류했는데 정말 어마어마한 몰입과 집중을 보여주었죠. 어제 준수와 첫 공연을 했는데 저는 너무 좋았어요. 모차르트 때부터 친분이 있는 준수 부모님들도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요.”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는 엘리자벳이 자유를 갈망하는 자신의 의지를 선포하듯 부르는 1막의 ‘나는 나만의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며칠 뒤, 신영숙은 독자들을 위해 이 넘버의 가사를 인용한 송년인사를 보내왔다.
“내 인생은 나만의 것, 나의 주인은 나야! 올 한 해도 감사했습니다. 2019년, 당신의 삶 속에서 멋진 주인공으로 사는 한 해가 되시길 응원합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