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
어려서부터 놀이처럼 시를 많이 외워서인지 프랑스 학생들은 시를 별로 어려워하거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프랑스 중고교에서 한국어 수업을 할 때, 1년에 10편 정도의 한국 시를 꼭 가르쳤는데, 시가 어렵고 싫다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우리의 ‘거점학교’ 수업처럼 파리 학생들이 모여 듣는 고교 연합 한국어 수업을 할 때다. 한국어를 잘하는 ‘고급반’ 학생들에게 패러디 시를 짓게 했더니, 정호승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바꿨다. “나는 다리털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 다리에도 털이 있어야 따뜻하다. … 다리에 있는 털이 살을 감싸 안아주는 모습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한국어가 서툰 학생들도 한국 시를 외우거나 베껴 쓰는 것을 좋아했다. 프랑스 고교에서는 보통 4월 ‘시의 봄’ 주간이 있어서 학생들이 자신이 지은 시나 배운 시를 써서 시화전을 하는데, 초급반 학생들도 제법 예쁜 글씨로 한국 시를 써서 인기를 끌었다. 필수과목인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중학생들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을 자세히 배우고 말하기 시험으로 외웠다. 발음이 서툴러서 “나보기가 요기요 가실 때에는 말없이 거의 보내 드리오리다”처럼 들렸지만 대부분 끝까지 잘 외웠다. 기본 단어와 표현은 그렇게도 못 외우면서 말이다. 그때의 제자 로라가 얼마 전에 찾아왔는데 ‘진달래꽃’을 아직도 줄줄 외워서 기특했다. 프랑스 학생들은 암기를 정말 잘 못하고 싫어하지만 시 외우기는 예외인 것 같다.
프랑스 교육은 암기가 아니라 창의성을 강조하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시와 연극 대사를 말로 외우는 것이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고 실제로 중시된다. 프랑스 학교에서는 ‘외우다’의 뜻으로 ‘m´emoriser’(암기하다)라는 단어보다 ‘apprendre par coeur’(마음으로 배우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어려서부터 몸과 마음으로 외운 문학작품 구절들이 창의성의 바탕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의 구절을 프랑스 고교 철학 시간에 배우는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된다.
임정원 하비에르국제학교 한국어·프랑스어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