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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방문에 격분한 이라크 정계, 미군 철수 요구

입력 | 2018-12-28 07:29:0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깜짝 방문은 국내에서는 전쟁터 방문을 안한 대통령이라는 비난을 잠재웠을지 모르지만 이라크에서는 커다란 정치적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분노한 이라크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은 2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26일 이라크 알 아사드 공군기지를 몰래 방문한 데 대해서 “오만한 행동” “이라크에 대한 주권 침해”라고 강력히 비난하면서, 이라크 주둔 미군을 당장 철수시키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미국 대통령이 국외의 전쟁터를 방문할 때에는 전통적으로 철저한 비밀이 유지되며 엄격한 보안이 뒤따른다. 트럼프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라크의 다른 지역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도착한 사실을 그가 떠나기 직전까지 거의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이번 트럼프의 방문은 이라크에서 외세의 영향력을 줄이는 문제가 정치적 핫 이슈가 되어있는 시기인데다가 모든 국가원수의 방문에 필수적인 관례인 이라크 정상과의 만남도 갖지 않은 정치적인 큰 결례가 문제가 되고 있다.

트럼프는 겨우 3시간 남짓 지상에 머무르면서 자기 주변의 모든 반대에도 시리아에서의 미군철수를 결정한 것을 변명하고 갔지만, 바그다드의 이라크 정치인들은 이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2003년 미군 침공과 점령기의 뼈아픈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이라크 국회의원 단체 이슬라 연맹의 수장인 사바 알사이디 의원은 “ 트럼프는 자기 한계를 알아야한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시대는 이미 끝났다”면서 그가 “마치 이라크가 미국의 한 주(州)인 것처럼 ” 슬쩍 다녀갔다고 비난했다.

이라크 총리실에서는 트럼프가 어떤 이라크 공직자도 만나지 않았고 두 정상이 직접 만나기 위한 일정에 대해서도 “양측의 의견차이가 있은 뒤에 ” 전화로만 압델 압둘-마흐디 총리와 통화하고 갔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라크의 여야는 의회에서 미군의 이라크 철수에 대한 투표를 요구하고 있어 트럼프 방문은 미국이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을 수도 있게 되었다.

미국은 바그다드 서쪽 100km 지점에 알아사드 공군기지를 갖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트럼프대통령은 이 기지를 시리아 공습을 위한 기지로 사용할 것이며, 따라서 이라크 주둔 미군 5200명은 철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이라크 정치인들과 국민들의 현재 정서와는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이라크인들은 국내외 정치보다는 국가의 주권을 중시하는데다 시리아 내전 등 분쟁 지역과는 거리를 두고 싶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 사이디와 같은 이슬라 의원단체 소속의 하킴 알-자밀리 의원은 “이라크는 미국이 이 지역에서 러시아나 이란을 상대로 승부를 내기 위한 플랫폼의 역할을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올해 5월 이라크 총선에서 승리한 알 사드르 종교지도자의 방침이 미국과 이란 어느 쪽도 이라크 정치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이라크 국민도 이를 지지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특히 이슬라 의원 연맹의 라이벌인 비나 연맹소속 의원들도 미국보다는 이란에 더 가까운 편이어서 이쪽의 카이스 카잘리 의원도 트위터에다 “미군 철수를 위한 의회 투표를 진행하거나, 민병대의 ‘다른 수단’을 이용해서 이들을 축출해야한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2007~2010년에 미군 점령지에서 시아파 반군의 반격을 주도한 혐의로 미국과 영국에 의해 투옥되어 옥중생활을 했던 의원이다.

이라크 정치평론가인 지아드 알-아라르는 “트럼프의 방문은 미군 주둔에 반대하는이라크의 모든 정당, 정치인, 무장 세력 등에게 도덕적인 명분과 큰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미국과 이라크는 아직도 IS와의 전쟁에서 군사 및 첩보작전, 비용 분담 등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때문에 미군의 성급한 철수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가 주목된다.

【바그다드( 이라크) = AP/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