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놀면서 쉴 수 있다 (또는 쉬면서 놀 수 있다)’는 말은 모순이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말과 같다고나 할까? 어느 한의사가 말했다. 아이들은 에너지(또는 열)를 발산해야만 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뛰어 놀아도 지침이 없다고. 초보 아빠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 중 하나가 아이들과 놀면서 템포 조절을 실패하는 경우다.
아이들은 에너지를 발산하면 할수록, 뛰어 놀면 뛰어 놀수록 더욱 강력한 존재가 된다. 반면 부모들은 놀아주면 놀아줄수록, 함께하면 할수록 급격히 에너지가 감소한다. 애당초 HP(게임에서의 체력 지수)와 회복력이 다른 존재들임을 잊지 말자. 그렇다고 아이들과의 놀이를 멈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한 슬기로운 아빠들로부터 ‘쉬면서 놀 수 있는 놀이가 있다’는 엄청난 제보를 받았다. 반신반의로 몇 가지를 따라 해봤다. 100% 효과를 보진 못했다. 그러나 놀면서도 짧은 휴식이 가능하다는 말의 뜻을 알게 됐다. 꺼져가는 휴대전화에 잠깐 충전기를 장착한 느낌이랄까? 아빠의 능수능란한 리드와 요령이 가미되면 더 긴 휴식도 가능할 수 있겠다 싶었다. (다음은 제보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
1. 의사놀이
의사놀이는 대부분 아이들이 한 번은 하는 놀이다.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 하는 아이라면 의사 놀이에 익숙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의사 놀이를 하되. 환자를 하라는 제보였다. 눈을 감고 누워 환자를 해보자. 아이가 의사로 빙의한다. 청진기를 가져다 대고 주사를 놓는다.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순간이다. 꾀나 짭짤하다. 한 곳 진찰이 끝나면 다른 곳이 아프다고 하자. 그리고 상처가 났다고 하면 밴드를 찾아와서는 붙여줄 때도 있다. 시간을 좀 더 벌 수 있다. 하지만 단점은 아이가 역할을 바꾸자고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환자 역할 시간을 더 버는 건 아빠의 몫이다. 눈을 잠시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2. 백설공주
독이 든 사과를 먹은 백설공주가 돼 보자. 의사놀이보다 상대적으로 더 눈을 감고 누워 있을 수 있다. 독이든 사과를 먹고 오랫동안 쓰러져 있어 보자. 아이가 아빠를 깨우려 뽀뽀를 해줄 수도 있다. 단점은 백설공주에 아이가 흥미를 보여야 한다는 점. “백설공주는 여자니까 아빠는 하면 안 돼”라는 아이의 논리적 공격을 받아칠 수 있어야 한다는 점. 남자아이의 경우 상대적으로 백설공주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는 점 등이 있다.
3. 잠자는 숲속의 공주
경지에 올라야만 할 수 있는 놀이다. 백설공주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술술 잘만 풀리면 계속 잘 수 있다. 정말 잠이 들 경우가 있는 것이 함정. 저주를 풀기 전까지 계속 잘 수 있다. 엄마의 도움, 예컨대 “아빠를 깨우려면 저걸 치워야해, ○○○을 해야 해~”라는 추임새를 넣어주고, 아이가 정말 그 행동을 하게 할 수만 있으면 휴식 시간을 더 벌 수 있다. 이 또한 “아빠는 남자니까 공주를 하면 안 돼”라는 논리적 공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4. 숨바꼭질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를 알려준다. 아이들은 숨는 놀이에 큰 흥미를 보이기 때문에 쉽게 따라할 수 있다. 이후 아빠가 숨는다. 숨는 위치는 (아이가 노련해지고 나이가 들면 통하지 않음을 유의하자) 이불 속. 이불이 두꺼워 아빠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을수록 좋다. 이불 속에 숨으면 아이들이 의외로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모 취재원은 20~30분 정도를 버텨봤다고 한다. 아이는 결국 울었다고 하니 참고하자.
아빠들도 에너지가 한정돼 있는 동물인지라 휴식을 취해야 한다. 휴식은 꼼수가 아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인 셈이다. 하지만 아이들도 하루 종일 아빠를 기다렸다는 점을 언제나 잊지 말자. 아빠의 피곤한 기색으로 인해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항상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주고 싶지만, 부모들도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가 아닐까? 슬기롭게 휴식을 취하는 것도 슬기로운 아빠생활을 위한 시작이라는 점에서 웃자고 쓴 글이니 정색하지 말자! 아이들아 아빠 덜 쉬어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각종 틈새 휴식 전략 제보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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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국 기자bj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