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지라 본사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의 모스테파 수아그 사장의 이 한 마디 말 속에 알자지라가 1996년 설립 이후 ‘중동의 CNN’이라는 명성을 유지하는 이유를 느끼게 했다. 알 자지라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뒤 주범으로 지목된 사우디 출신의 오사마 빈 라덴을 단독 인터뷰해 중동에서는 압도적인 취재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음을 과시했다.
모스테파 수아그 알자지라 사장
먼저 지난해 6월 사우디 이집트 바레인 아랍에미리트(UAE) 리비아 예멘 몰디브 등 7개국이 카타르와 국교를 끊고 육해공 왕래를 차단하는 등의 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물었다.
- 단교 사태로 알자지라도 취재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무엇보다 단교를 주도한 나라들에서 발생하는 뉴스 현장에 갈 수 없다는 게 큰 제약이다. 이 나라들은 중동에서 규모가 크고 취재 비중도 큰 중요한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자지라는 늘 어려움을 겪어왔다. 비판적인 보도로 지국이 폐쇄 당한 일도 여러 번 있었고, (서구에선) 아랍국 편을 든다는 오해도 받았다. 심지어 알자지라가 ‘테러를 촉진시킨다’고 표현한 미국 정치인도 있었다. 일부 나라에서는 지금도 우리의 활동을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알제리 출신이지만 알제리는 아직 알자지라의 활동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알자지라는 글로벌 미디어로 성장했다. 그만큼 어려움 속에서 일하고, 성과를 내는 데 익숙하다.”
- 단교를 주도한 나라들이 알자지라에 대한 불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
“단교 전후 언제든 알자지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도한다는 방침을 버린 적이 없다. 알자지라를 폐쇄하려는 이들은 거울에 비쳐진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든다고 거울을 부서 버리는 행동을 보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단교 전에도 알자지라 취재를 막고 싶어했다. 예전에는 알자지라 보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자국 주재 카타르 대사에게 강하게 항의한 나라도 있다. 독립 언론사의 보도를 가지고 그 나라 대사한테 항의하는 건 적합한 조치가 아니지 않은가. 이런 행동은 자유 언론의 의미를 모르고, 언론사가 자국 정부에 유리한 보도만 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수아그 사장은 “알자지라는 카타르 정부의 지원을 받지만 보도는 자유롭게 하는 독립 언론사”라고 말했다. 알자지라를 경영하는 이사회의 회장은 왕실 구성원 중 한 명이 맡고 있지만 회사 운영의 핵심인 보도와 제작은 사장이 독립적으로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권한 뒤 미국에서 반(反)아랍 정서가 강해졌다. 미국 정·관계 취재가 어려워졌나?
“미국 정부 관계자들을 취재하는 게 특별히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 들어 펜타곤(미 국방부)에 알자지라가 출입하면서 취재할 수 있게 됐다. 알자지라 방송을 계속 본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알자지라에 대한 반감이나 편견이 적다. 아랍 국가들과 적대적인 이스라엘에서도 우리 기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다. 알자지라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매우 큰 지국들을 운영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특정 보도에 대해 화를 내고 비판한 적도 있지만, ‘알자지라가 잘못됐다’는 식으로는 말하진 않는다. 알자지라에 대해 강한 반감이 있거나, 아예 거부하는 이들일수록 우리 뉴스를 제대로 안 본 경우가 많다.”
알자지라는 이스라엘 수도인 예루살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행정수도인 라말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활동지역인 가자지구에도 지국을 운영 중이다.
- 앞으로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 계획은?
“우리는 설립 이후 들었던 ‘중동의 CNN’이란 닉네임에 만족하지 않는다. 글로벌 미디어를 늘 지향한다. 그런 만큼 전세계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게 목표다. 아시아도 매우 주목하는 시장이다. 이미 중국과 인도네시아에서는 해당 국가의 언어로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최근에도 중국 출장을 다녀왔다. 앞으로 한국을 포함해 다른 아시아 나라에서도 더욱 영향력을 키우고 싶다. 특히 디지털 콘텐츠를 이용해 아시아 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싶다.”
알 자지라는 2006년 영어 방송(‘알자지라 잉글리시’)을 시작하며 글로벌 언론사로서의 본격적인 영향력 키우기에 나섰다. 2007년과 2011년에는 각각 다큐멘터리(알자지라 다큐멘터리)와 유럽의 발칸 지역을 대상으로 한 채널(알자지라 발칸)도 설립했다. 현재 중동에서 22개, 비(非)중동 지역에서 40개의 지국을 운영하고 있다.
- 아시아 국가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기자들이 자유롭게 취재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아시아에 많지 않다. 가령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은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도 많다. 아시아 국가들, 특히 민주주의 체제인 나라들 중에서도 알자지라 보도가 비판적이고, 민감한 사안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나라는 우리 기자에 대해 방문 비자도 안 내줬다. 또 다른 나라는 비정치 이슈와 관련된 취재를 진행하려는 취재팀에 대해서도 당국이 계속 감시를 했다.”
- 한국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언론 환경이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그러나 4년 전 한국을 방문했고 기자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민감한 이슈에 대해선 약간 언급을 꺼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 회사 차원에서 앞으로 중점적으로 보도하려는 이슈가 있는지?
“알자지라는 인권에 관심이 많다. 자유인권센터란 조직을 운영하며 관련 뉴스를 발굴해 적극 보도하고 있다. 앞으로는 언론 자유와 기자들에 대한 탄압에 대해서도 적극 보도할 계획이다. 언론에 대한 탄압이 전세계적으로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알자지라 기자인 마후무드 후세인은 지금도 이집트에 2년째 붙잡혀 있다.”
- 기자 채용이나 인력 운용에서 중시하는 것은?
“다양성이다. 현재 알자지라에는 96개 국적의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카타르 도하 본사에도 50개국 이상에서 온 구성원들이 일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출신 국가, 종교, 사상에 대해 묻지 않고, 언론인으로서의 자질과 성과만 보는 문화가 잘 뿌리내려 있다고 생각한다.”
-기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카타르가 중동의 교육 문화 중심지가 되겠다는 비전을 마련한 직후 설립된 ‘알자지라 방송’은 이 나라의 대표 아이콘 중 하나가 됐다. 알자지라는 ‘카타르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해 카타르의 관광지에선 알자지라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와 머그컵 같은 기념품도 구입할 수 있다. 카타르와 단교한 국가들은 단교 해제 조건 중 하나로 알자지라 폐쇄를 내걸고 있다. 수아그 사장과 인터뷰하면서 복잡한 중동 정세가 알자지라의 취재 보도에도 그대로 전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도하=이세형기자 turtle@donga.com